연합의 정신으로 ‘준비 속도’ 높여야… 4개 교단, 20개월 논의하고도 준비위조차 발족 못해
입력 2011-06-21 17:58
“다가오는 한국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대한 당신들(한국 기획준비위원회)과 한국 교회들의 긍정적인 헌신이 저를 기쁘게 합니다.”
WCC 울라프 픽쉐 트베이트 총무가 지난 16일자로 한국의 회원 교회들에 보낸 서신의 한 대목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한국으로부터 받았다는 공문을 언급하며 “일정에 맞춰 중요한 결정사항을 알려준 덕분에 우리도 계획대로 일할 수 있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2013년 WCC 10차 부산 총회 준비가 잘 진행 중이라는 인상을 주는 내용이다. 그러나 국내의 실상은 조금 다르다. 다름 아니라 여기 언급된 ‘공문’이 촉매제가 돼 총회 준비와 관련한 교계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더딘 준비 과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오후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는 ‘제10차 WCC 총회 한국준비위원회 구성에 대한 3개 WCC 회원교단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는 지난달 30일 기획준비위원회 위원장단의 서명으로 WCC에 전달된 공문은 합의되지 않은 내용이며 3개 교단에 알리지 않은 채 전달됐으므로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세 교단은 “교회 일치와 연합에 심각한 상처가 남았다”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기획위원회 합의사항을 파기하고 원점에서 NCCK 회원 교단과 에큐메니컬 기관을 중심으로 ‘한국준비위원회(가칭)’를 재조직하겠다”고 밝혔다.
내용은 ‘위원장단의 월권’에 대한 문제 제기이지만 실제로는 4개 회원 교단 중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를 제외하고 준비위를 꾸리겠다는 것이어서 교단 간 갈등 구도가 보이고 있다. 기장 총회 배태진 총무는 “그동안 독단적으로 총회 준비를 끌고 가려 했던 예장 통합 측에 불만이 누적돼 오다 이번에 결의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예장 통합 총회는 21일 “모든 대화와 입장 표명은 가능하지만 준비기획위 틀 안에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복음주의 및 오순절 계열 교회를 배제한 채 3개 교단과 에큐메니컬 기관 중심 개최를 주장하는 것은 연합과 일치 운동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다”라는 입장을 냈다.
아직 봉합의 여지는 남아 있다. 3개 교단 대표들이 다음 기획위원회 자리에 일단 참석해 문제 제기를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20개월 이상이나 논의하고도 준비위 발족조차 안 되고 있는 점, 에큐메니컬 정신이 드높아지기는커녕 분열이 촉발되는 점은 한국 기독교인들로서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회적으로는 한국 교계의 고질적 병폐인 ‘주도권 다툼’이 재현되는 것으로 비칠 가능성도 크다.
이러는 가운데 실질적인 총회 준비는 뒤로 밀리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그중 하나가 늦어도 5월 중에는 한국 측 예배 조감독과 음악 조감독을 결정, 지난 16∼22일 아르메니아에서 열린 WCC 예배위원회에 보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 16일자 트베이트 총무의 서신 중에는 “프로그램 활동과 의사결정 과정에 모두 여성과 청년의 완전한 참여(full participation)를 포함해 달라”는 내용이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까지 돼 있으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역대 WCC 총회들을 연구해 온 한 신학자는 “총회 행사는 3분의 1이 예배이므로 한국의 저력과 문화를 보여주려면 예배 준비에 주력해야 하며, WCC의 여성과 청년 참여 기준을 맞추려면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총회 주제어가 ‘정의’ ‘평화’ ‘생명’인데 세계 교회 앞에 한반도와 통일의 문제를 어떻게 부각시킬지에 진정한 역량을 쏟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