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민보안성 내부자료 최초 공개] 달러 사용 금지에도 실생활에선 개인 소유권 인정
입력 2011-06-21 21:51
[인민보안성 자료로 본 북한] (하) 법과 현실의 괴리
본보가 입수한 인민보안성(현 인민보안부) 내부자료 ‘법투쟁부문 일군(일꾼)들을 위한 참고서’는 북한 당국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맞춰 법을 적용하려 애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료를 살펴본 북한법연구회 소속 교수들은 21일 “해당 기관에서 법의 적용과 사건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며 “체제 안정을 위해 주민들의 생활 현실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법을 적용하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 반영=북한 체제가 규제하고 있지만 빈번히 일어나는 상황을 인정하고 반영한 대목이 눈에 띈다. 이른바 탈북, 즉 국경을 넘는 행위에 대해 생계형과 반체제형으로 구분해 양형을 적용토록 하는 게 대표적이다.
북한 형법 233조는 ‘비법국경출입죄’의 경우 2년 이하의 노동단련형이나 정상이 무거운 경우 5년 이하의 노동단련형에 처하게 돼 있다. 이 자료는 ‘농장원이 소를 끌고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에 판 뒤 몰래 소를 갖고 국경을 넘어온 경우’와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준 뒤 국경을 넘어갔다 오면 50만원여분의 물건을 받아가진 주민’의 예를 소개한 뒤 무겁게 처벌해야 하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 가서 살 목적으로 넘거나, 5번 이상 상습적으로 국경 넘는 일을 돕거나 3번 이상 넘나든 경우’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민법 부분에서는 달러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통일부 관계자는 “1993년 제정된 외화관리법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외화를 사용하거나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면서 “은행에서 북한 돈으로 바꿔 쓰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자료에서는 중학생이 집에 있던 500달러를 들고 친구와 평양에 놀러갔다 100달러를 친구에게 줬을 때 부모가 가서 돌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고려대 법대 신영호 교수는 “달러 소지 자체가 불법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현실에선 달러가 많이 사용되다 보니 개인 간 분쟁 시 나름의 법적 보호를 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결혼 전에 가져온 컬러TV나 일제 라디오 등은 이혼 시 개별재산으로 인정해 가져갈 수 있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북 법제, 일정 수준 도달=형법 부분을 검토한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는 “내용도 쉽게 돼 있지만 무엇보다 해석이 아주 정확하다”며 “각 조문의 범위를 넘어 해석하지 않도록, 권한 남용이 없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개별 조문의 취지는 무엇이며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7년 전인 2004년에야 죄형법정주의를 도입했고 그동안 법보다 김정일 위원장과 김일성 주석의 방침에 따라 유지돼 왔던 사회임을 감안하면 무척 빠른 수준으로 사법제도의 틀을 갖춰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형사소송법 분야의 전체 조문 중 일부분만 식별이 가능해 부분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는데 이를 검토한 김&장 법률사무소 이백규 변호사는 “사건 병합 처리, 사건 취급 시작과 수사 시작 결정 기준 등 개별 절차에 대해 상세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인권보장 측면에서 문제가 될 만한 조항도 발견됐다. 자료에서는 개인집 앞방에서 일어난 사건 수사 중 집주인이 사건 발생 전부터 잠겨 있던 다른 방에 대한 검증을 거절하더라도 검사 승인 없이 검증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검증을 판사의 영장이 필요한 강제행위로 보는 한국과 달리 강제 검증을 허용하고 있다”며 “그러면서 검증을 거부하면 이를 직무집행방해죄로 체포하거나 제압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다소 모순된 해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