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영업정지 신청 권고’ 인출사태 발단… 경영진, 정지 전날 주요고객에 “돈 빼라” 연락

입력 2011-06-21 18:35


부산저축은행그룹 영업정지 이틀 전인 2월 15일 오후 8시30분. 금융위원회 저축은행 구조조정대책반은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과 김민영 대표이사 등에게 은행 영업정지 신청을 요청했다. 계열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은행 경영진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영업정지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예금 사전 인출사태를 일으키는 빌미가 됐다.

영업정지가 이뤄질 것이라는 사실은 16일 오전 은행 경영진에게 알려졌고, 김양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은 은행 영업시간이 끝난 같은 날 오후 5시쯤 안아순 전무에게 주요 고객의 예금을 인출할 것을 지시했다. 안 전무는 고액 예금주 7명에게 연락해 “은행이 영업정지될 수 있으니 돈을 인출해 가라”고 은밀히 전했다. 호남 지역의 장학회 관계자와 부산지역 신용협동조합 관계자도 전화를 받았다. 이들은 직접 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영업시간이 지난 뒤였지만 이미 안 전무가 손을 써 뒀다. 이들은 셔터가 내려진 부산저축은행 본점과 지점 옆문으로 들어와 28억8000만원을 빼갔다.

큰손들의 예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은행 직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곧 직원과 그 지인의 본격적인 예금 인출 러시로 이어졌다. 312개 계좌에서 28억6000만원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계열은행인 대전저축은행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 은행 김태오 대표는 영업정지 전날인 16일 오후 3시30분쯤 은행 간부에게 고액 예금주들의 예금 인출을 지시했다. 대상은 은행이 영업정지되면 예금 5000만원 이상을 날릴 수 있는 고액 예금주로 정해졌다. 소식을 들은 고객 33명 중 29명이 바로 22억2000여만원을 인출했다. 나머지 4명은 예금을 여러 계좌로 나눠 예금자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상태였다. 은행 직원들 역시 71개 계좌에서 5억5000만원을 빼갔다.

부산·대전저축은행에서 영업정지 전날 이런 방식으로 부당 인출된 예금은 모두 85억여원에 달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전날 인출한 고객들은 대부분 은행이 특별 관리하는 큰손이었거나 직원, 또는 직원의 친·인척과 지인이었다.

금융당국은 고액 예금주와 직원들이 예금을 빼낸 뒤 17일 오전 8시40분 부산·대전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은행 경영진 또는 직원들과 사적인 친분이 없었던 대부분의 예금주들은 영업정지가 이뤄진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