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軍과 언론
입력 2011-06-21 17:40
‘펜타곤 페이퍼’와 피그스만(彎) 침공사건. 언론 보도와 군사기밀 또는 알 권리와 국익(국가안보)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다. 전자가 언론이 보도를 밀어붙인 경우라면 후자는 보도를 자제한 경우다.
미국의 베트남전 정책 결정 과정을 기록한 극비 문서인 펜타곤 페이퍼에는 무엇보다 ‘통킹만사건’의 내막이 들어 있었다. 미국은 1964년 북베트남 통킹만에서 미국 군함이 폭파되자 이를 북베트남 소행이라고 주장하면서 확전의 빌미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자작극이었다는 내용이다. 이런 사실이 포함된 펜타곤 페이퍼가 1971년 뉴욕타임스에 보도되자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거센 반전운동이 일어나면서 결국 미국은 ‘부도덕한’ 베트남전에서 발을 빼야 했다.
피그스만 침공은 카스트로의 쿠바 공산혁명이 성공한 직후인 1961년 4월 미국의 군사훈련과 재정 지원을 받은 쿠바 망명자 부대를 피그스만으로 상륙시켜 공산정권 전복을 시도한 사건이다. 미군은 직접 참여하지 않았고, 중앙정보국이 주도한 작전이었지만 군부의 재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사실을 미리 포착한 뉴욕타임스는 군사작전인 점을 감안해 1단으로 간략하게 보도했다. 침공 결과는 대실패였고 이는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이어졌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뉴욕타임스가 기사를 크게 실었더라면 차라리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던가.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에서 연임하면서 명(名)국방장관으로 평가받는 로버트 게이츠 장관이 언론과 군의 관계에 관한 소회를 밝혔다. 퇴임을 앞두고 16일 가진 고별 기자회견에서다. 그는 “언론과 군은 대부분 상호 불신과 증오를 갖게 마련이지만 헌법에 보장된 자유의 파수꾼인 언론을 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늘 장교들에게 주지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읽은 기사들이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며, 나는 누구보다 정보 누설을 싫어하지만 미국 국민을 대신한 언론의 워치독(파수견) 역할을 매우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이야말로 펜타곤 내부에서 장관에게 말하지 않는 문제점을 깨닫게 해준 ‘통로’였다며 “그간 거친 질문을 해줘 고마웠다”고도 했다.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바로 이런 생각이 그를 정권이 바뀌어도 장수 국방장관으로 일할 수 있게 한 밑바탕이자 ‘강한 미국’ ‘강한 미군’의 원동력 중 하나가 아닐까. 우리에게도 게이츠 장관 같은 솔직하고 열린 마음의 국방 수장이 있으면 좋겠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