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캠핑을 위한 변명… 美 기독매체 “종말에 대한 기본적인 확신 인정해야” 평가

입력 2011-06-21 15:52


[미션라이프] ‘2011년 5월21일 종말이 온다’고 예언을 했던 미국 ‘패밀리 라디오’ 설립자 해롤드 캠핑(88·사진)에 대한 세계 언론의 반응은 냉소 일색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미국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잡지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최근 온라인 판에 캠핑의 종말 주장이 현대를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교훈도 있다는 내용의 사설을 올려 화제다. 잡지는 ‘해럴드 캠핑은 (어떤 면에서) 옳다’(Harold Camping is ‘sort of’ right)는 제목의 사설에서 종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캠핑이 종말은 결코 없는 것처럼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던져주고 있다는 논조를 폈다. 물론 캠핑의 ‘종말 일시 지정’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도 “세상은 종말을 향하고 있다”는 그의 기본적인 확신은 인정할 만하다는 것이다.

사설은 “이 땅의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진리는 성공적이고 진보적인 자본주의 세계를 사는 어떤 사람들(수많은 북미의 복음주의자들도 포함된)에게는 부담스러운 뉴스일지 모른다”면서 “그러나 종말은 반드시 온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자들에게 그것(종말)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고도 덧붙였다.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종말의 핵심은 우리가 행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면서 요한계시록 21장3절을 토대로 천국의 삶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언급했다. 종말론적인 삶의 태도를 갖출 때 크리스천들은 ‘왕국을 짓거나 창조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는 확고한 피조물 인식을 통해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설은 “우리가 이웃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이 땅이 소멸 된 이후에는 심판의 날이 온다는 것’을 반드시 이야기 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종말 이후 새로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도 알려줄 책무가 신자들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크리스채너티투데이의 사설은 일종의 ‘캠핑을 위한 변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해프닝으로 끝난 캠핑의 종말 주장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종말 의식을 갖게 하는 반면교사 역할을 하는 듯 하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아래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원문

‘종말은 온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해럴드 캠핑이 주장한 바는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한다. 주지하다시피 전 세계 언론들은 그를 조롱했다. 그러나 라디오 전도자인 캠핑의 휴거론을 부정하는 크리스천들이라 할지라도 그의 기본적인 확신에 대해서는 평가를 해야 할 듯하다.

5월21일 휴거주장이 실패로 끝난 이후(그가 6월9일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 캠핑은 자신의 주장(휴거 일자를 지정한 것)은 오직 ‘영적인 도래’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같이 덧붙였다. “영적으로는 10월21일(휴거일이)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그 시기는 아주 빠를 것입니다.”

그 대 멸절의 순간이 아주 임박한지 여부에 대해서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캠핑의 종말에 대한 타임테이블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사실 이 땅의 모든 것은 지나간다. 사라진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35절에 그렇게 말하셨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이것은 어떤 이(수많은 북미의 복음주의자들도 포함된다) 에게는 아주 부담스러운 뉴스일 것이다. 우리는 보다 성공적이고 안락하게 진보하는 자본주의 사회속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날 동안 우리는 거하고 있는 이 땅을 좋아한다. 그것이 우리가 천국은 문제없는 지구로, 이 땅에서의 일이 하늘까지 연결된다고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역사학자 게리 스콧 스미스는 ‘미국인이 상상하는 천국’이라는 책에 한 인간의 사회경제학적인 여건들이 어떻게 그 사람의 천국관을 결정하는지에 대해서 기록했다. 예를 들어보자. 그에 따르면 1890년과 1920년 사이의 기술적 혁신은 산업과 농업의 생산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으며 수많은 치유불가능하다던 질병들의 치료법을 발견하게 했다. 그 시기동안 일인당 GNP는 4배 이상 증가했고 수많은 분야에서 엄청난 진보가 이뤄졌다.

이러한 진보에 발맞춰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천국을 활동적인 영역, 성자들(천사들)이 여러 형태의 봉사들을 행하며 지혜와 인격, 영성이 본질적으로 커져 가는 영역으로 인식했다.

1세기 후에 우리는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진보가 우리의 경제와 물질, 사회적인 재화들을 몇배나 증가 시키는 풍성함을 경험했다. 일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적인 윤리로 무장된 복음주의자들은 이러한 모든 진보의 으뜸가는 수혜자 가운데 한 부류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을 이미 경험하고 즐긴 편안한 삶처럼 인식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롭 벨이 논란많은 ‘사랑이 이긴다’에서 기술한 것과 같이 ‘정직한 경제, 대속적인 예술, 존경할만한 법률, 충분히 지속가능한 생활, 약, 교육, 가정 꾸리기, 정원 가꾸기...’등은 도래하는 시대(천국)에서도 지속될 것이다. (거기에서도) 모든 부유와 좋은 것이 경제적 자유와 안정된 재정적 여건을 지닌 사람들에게 담보되어 있다.

그러나 하루에 16시간씩 등이 부러지고 심장이 마비되는 노예와 같은 환경속에서 견뎌야 하는 가난하고 억압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건강과 법의 통치, 좋은 교육, 보상 있는 노동이 담보된 천국의 삶은 단지 현재의 연장선이 아니다. 그들에게 그런 것들(좋은 교육 등)은 세상과는 날카롭게 단절된 하나님 왕국의 도래로만 가능하다.

포인트는 이것이다. 천국은 우리에 관한 어떤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천국의 영광은 우리가 행하고 느끼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대신 ‘우리가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계시록 21장3절)

물론 현 세대와 오는 세대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동시에 그 둘 사이에는 너무나 큰 불연속점이 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린도전서 13장12절)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누가복음 20장35절) “다시는 사망과 애통하는 것이 없고”(계시록21:4)

성경 기자들이 현재의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땅과 하늘이 급격하게 새로운 어떤 것으로 변하는 것만을 천국이라고 기술할 수 있다면 천국은 너무나 다양하게 될 것이다.(마24:35, 베드로후서 3:10-11, 계시록 21:1)

이 낙관적이고 기업가 정신 투철한 시대,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늘의 왕국 건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대, 마치 우리의 선한 행위가 하늘의 새예루살렘의 기초가 될 것처럼들 이야기 하는 시대에 이점(천국은 우리에 관한 어떤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아마도 여러분은 한번 이상 이같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교회의 목적은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소리 말이다.

그 말이 맞는가?

맞다. 그러나 동시에 틀리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긍휼과 정의라는 수고를 필요로 한다. 그 수고는 도래하는 천국에서의 삶을 미리 맛보고 증거하는 강력한 것이 될 것이다. 예수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을 최우선순위에 두라고, 거기에서 야기될 위험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마6:33)

그러나 하나님 왕국 사역에 대한 순전한 참여는 오직 그 왕국을 도래하게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분이 성공을 담보하실 때에야 가능하다.

왕국을 짓거나 창조하는 주체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그 것을 상속받을 뿐이다. 마치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우리를 위해 예비된 어떤 것이 있는 것처럼 상속받는 것이다.(마25:34) 이것은 엄청난 뉴스다. 책임은 변덕스럽고 죄 많은 인간의 어깨 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강하고 긍휼 풍성한 등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들, 혹은 우리 자신들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어떤 말인가?. 예수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요18:36), 이 땅이 소멸된 이후에는 심판의 날이 온다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 현재 세상에서 보여지는 긍휼과 정의에 의해서 미래가 좌우될 것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며 거기에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일깨우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