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미래의 수레바퀴 이제는 신재생에너지가 돌린다
입력 2011-06-21 17:53
‘2050년까지 화석연료 제로’ 선언 코펜하겐·함부르크를 가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00일이 넘었다. 사고 여파로 세계 각국은 원자력발전 정책을 수정하고 있다. 독일은 2022년까지, 스위스는 2034년까지 원전의 단계적 폐기를 결정했다. 이탈리아의 원전 부활 계획은 94%의 반대로 부결됐다. 그러나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 비중을 59%로 확충하겠다는 한국정부의 계획은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 주요 정책결정자들은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와 원자력의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예정부지에서 주민 반발이 커가고 원전 세계시장이 위축되면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도 원전 확대를 고집하기가 어렵다. 유럽은 어떻게 재생에너지 시장을 키웠을까.
돌고, 돌고, 또 돈다. 고즈넉한 시골길을 따라 서너 개씩, 혹은 혼자 서서 바람개비를 돌리는 풍력발전기는 가로수만큼이나 풍경에 녹아 있다. 해안길에서 보면 저 멀리 수면 위로 솟은 수십 주의 하얀 바람개비가 장관이다. 도심의 랜드마크 빌딩 옆에도, 공장 옆에도, 유람선이 지나는 강변 관광지에도 어김없이 풍력발전기가 돌고 있다.
2050년까지 ‘화석연료 제로’라는 목표를 앞다퉈 내세운 덴마크 코펜하겐과 독일 함부르크. 두 도시를 둘러봤을 때 마치 가상의 미래도시에 온 듯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 상황에서는 요원한 ‘신재생 에너지 100%’ 목표를 어떻게 구현해가고 있는지 살펴봤다.
◇40년 전 내다본 미래=덴마크는 확실히 평평한 나라다. 평균 풍속도 센 편이다. 그래도 전체 전기 공급의 20%를 풍력이 담당하기까지 쉽지 않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충격으로 에너지 독립 문제가 대두됐지만 화석연료 가격은 대체에너지 개발비보다 쌌다. 원자력 기술도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덴마크 정부는 먼 미래를 바라보기로 했다. 덴마크는 71년 세계 최초로 환경부를 설치한 나라다. 풍력발전기를 구입·설치하는 개인과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친환경·재생가능 에너지 연구와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덴마크 기업 ‘베스타스’는 풍력발전기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됐다.
농가에서 배출되는 짚, 간벌목, 음식쓰레기를 이용해 지역 단위의 난방과 전기를 동시 공급하는 열병합발전시스템이 발달했다. 이 같은 바이오매스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현재 코펜하겐 전체 난방의 61%를 감당한다. 덴마크 정부는 동시에 국민의 에너지소비를 줄이기 위해 에너지소비세를 대폭 올렸다. 현재 전기료는 한국의 4∼5배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부가가치세가 25%, 배기량이 클수록 누진세율이 높아지는 등록세가 최대 180% 붙는다.
2020년까지 풍력발전 비중을 50%로 올린다는 목표는 만만치 않다. 정부 산하 전력망 관리기업인 ‘에너지넷DK’의 한스 모겐슨 부사장은 “풍력에너지는 저장할 수 없다는 난제를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구하면 길이 보인다’는 자세는 확고하다. 10억 크로네(약 2조원)를 투입해 개발 중인 것이 ‘스마트 그리드’ 체계다. 나라 전역의 크고 작은 발전설비를 하나의 발전소처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밤에 생산된 풍력에너지를 전기자동차에 충전해 두는 식으로 시간대별 수요와 공급을 맞춘다.
이밖에도 해상·풍력 발전단지 개발, 수소연료 버스 도입 등 신재생 에너지 100%를 향한 덴마크의 도전은 이어지고 있다.
◇환경도시가 미래 도시=독일 함부르크는 유럽연합(EU)이 선정한 2011년 환경도시다. 베를린에 이은 독일 제2의 도시이자 북유럽 최대 물류 항구인 함부르크가 이 타이틀을 얻기까지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을 90년 대비 15% 줄인 것이 대표적이다. 향후 목표는 2020년까지 40%, 2050년까지 80% 감축이다. 폐수처리, 환경투어 개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가장 큰 자랑은 엘베강 인근에 개발 중인 하펜시티다. 기름 오염이 심했던 항구 지역을 최첨단 친환경 도심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개발이 끝나면 도시 전체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큰 프로젝트다.
거의 완공 단계인 하펜시티는 마치 건축박람회장 같다. 독특한 외관 중에서 유독 비닐막을 씌운 형태가 많은데 건물 내 대류현상을 극대화시켜 냉·난방이 필요 없도록 한 설계다. 주거지와 상업지구가 섞인 것도 독특하다. 장거리 출퇴근으로 인한 CO₂ 배출을 줄이려는 것이다. 유력 언론 슈피겔과 유니레버도 이곳에 사옥을 짓고 있다.
함부르크 환경국 제니퍼 베쉐 부국장은 고속도로에 녹지 덮개 씌우기, CO₂ 배출 비중이 높은 기업과 맺은 감축 합의 등을 설명했다.
앞으로 40년을 꾸준히 노력해야 달성할 수 있는 게 신재생 에너지 100%다. 그러나 두 도시는 도착 지점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한국 상황과는 비교조차 어렵다. 베쉐 부국장은 “우리도 시민과 기업에 당장의 불이익과 불편을 감수하라고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친환경 도시는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미래이며 늦게 갈수록 도태된다는 점에 모든 주체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코펜하겐·함부르크=글·사진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