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범죄 없는 지상낙원’의 범죄처리 지침서

입력 2011-06-20 17:31

북한의 실상, 특히 각종 범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밀 내부문건이 외부에 드러났다. 본보가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갈렙선교회를 통해 단독 입수한 ‘법투쟁부문 일군들을 위한 참고서’다. 우리의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이 펴내 북한 전역 인민보안부서에 하달한 것으로 확인된 이 책자는 머리말에서 밝혔듯 ‘실재하거나 있을 수 있는 정황들에 기초한’ 사건 721개를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처벌 지침을 밝히고 있다.

이로써 ‘범죄 없는 지상낙원’이라고 주장하던 북한의 선전이 완벽한 허구였음이 북한 당국 스스로에 의해 입증됐다. 아울러 주로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해 알려진 열악한 인권 등 북한 주민의 피폐한 생활상을 믿을 수 없다며 북한을 두둔해 온 친북·종북세력의 억지도 발붙일 곳을 잃게 됐다.

책자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북한 주민들이 처한 식량난 등 생활고가 고스란히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총 721건의 사례 중 식량난으로 인한 범죄가 가장 많았다. 특히 소문이 무성하던 ‘인육사건’도 5건이나 등장해 충격을 준다. 한 노동자가 동료 노동자를 살해해 일부를 식용으로 먹고 나머지를 양고기로 속여 시장에서 팔다 적발됐다는 내용은 말로 옮기기에도 끔찍하다.

물론 이 사건이 실재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책자가 스스로 밝힌 대로 ‘있을 수 있는 정황에 기초한’ 사건이라 해도 실제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일이 충분히 가능함을 당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여성 공장 회계원이 추위 때문에 사무실에서 소형 전열기를 쓰다 적발돼 ‘전력사용질서위반죄’가 적용됐다는 사례는 연민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처럼 춥고 배고픈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 사이에 마약이 만연하고 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입증하는 사례들도 소개됐다. 친북세력 등은 돈도 없는 북한 주민들이 무슨 마약을 사겠느냐며 북한 사회를 왜곡하지 말라고 주장해 왔으나 비밀 책자에 등장한 사건들은 마약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책자에는 횡령, 뇌물수수, 위조지폐 제작·유통 등 자본주의 뺨치는 범죄들이 수두룩하다.

다만 고무적인 것들도 있다. 우선 남한과 서구문화 침투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남한과 미국 콘텐츠가 들어 있는 CD를 복사해 팔다 단속에 걸렸다든가 산에서 주운 라디오로 남한 방송을 듣고 내용을 전파하다가 적발된 사건들이 그것이다. 철저히 폐쇄된 북한에 외부 정보 유입은 많을수록 좋다.

또 북한이 이런 책자를 만들어 돌린 것 자체가 ‘법치’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거니와 그게 사실이라면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위해 좋은 일이다. 북한은 이제까지 김일성·김정일의 이른바 ‘교시’와 말을 법 위에 올려놓는가 하면 김정일은 법과 상관없이 마치 전제군주 같은 권력을 행사해왔다. 북한 공식 자료에 근거한 실상을 더욱 널리 알려 북한 현실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한편 북한인권법 제정 등 북한 사회의 현실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조치들을 계속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