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강렬] 문 변호사, 정치는 虛業입니다

입력 2011-06-20 17:32


문재인 변호사, 그는 2012년 대선에서 야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와 일면식도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캠프 좌장을 오랫동안 맡고 지금도 노무현 재단 이사장임에도 언론계 30여년 거의 전부를 정치부에서 보낸 필자와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조우한 일이 없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는 늘 관심을 갖고 보고 있다. 그가 모 언론사 중견 기자와의 만남에서 밝힌 ‘정치를 안 하는 다섯 가지 이유’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정치 불참 5가지 이유 옳다

그는 자신이 정치를 잘할 수 있지 않을 것 같아서 정치를 안 한다고 했다. 두 번째로 ‘정치권에 가면 사람이 영 이상해져서…’라고 이유를 댔다. 이어 ‘정치란 게 빚이라서’ 안 한다고 했다. 네 번째로 정치란 게 허망하고, 마지막 다섯째로 ‘정치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 같지 않아서’라고 밝혔다.

자신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국가’와 ‘민족’을 갖다 붙이며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인간들은 봤어도 이렇게 명확하게 자신이 정치를 안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이는 보지 못했다.

지난 50년간 한국 현대정치의 중심에 서 있었던 김종필 전 총리가 최근 “정치는 허업(虛業)이다”라고 술회했다. 대통령 자리를 빼놓고 모든 자리, 모든 권력을 다 차지하고 쥐어본 85세의 노 정치인이 내린 정치에 대한 정의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을 ‘五十而知四十九年非’(쉰 살이 되어 돌아보니 49년을 헛되이 살았더라)라고 했다. 나이 80세가 넘었으니 이제는 ‘八十而知七十九年非’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인생을 정리하는 노 정치인이 뒤늦게 깨달은 ‘정치는 허업이다’를 문 변호사는 지천명의 나이에 깨달은 것 같다.

문 변호사가 두 번째로 밝힌 ‘정치권에 가면 사람이 영 이상해진다’는 말도 참 공감이 간다. 한국 정치의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가 똑똑하고 정의롭던 사람이 정치권으로 활동무대를 옮겨 정치인이 되면 영 이상해지는 것이다. 변호사, 의사, 약사, 언론인, 고위 공무원, 기업인, 심지어 노조 활동가까지 어느 지위에 오르면 정치권으로 옮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같이 바보스럽게 변한다. 이게 한국정치다.

마지막으로 밝힌 “정치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 것 같아서”는 한국 정치현실을 한마디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는 상생의 정치, 생산적 정치가 아닌 욕망의 정치, 탐욕의 정치다.

본래 정치란 행위로 하는 게 아니고 말로 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정치인들의 말은 공허함 그 자체다. 거기엔 책임이 없다. 정치인들은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가 국민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다. 민주주의에서 국회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내년 대선 징발해도 가지마라

나무는 그냥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냥 놔두질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무동을 타려 하고 있다. 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 2주기 고유제를 지낸 뒤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기 난감하다”고 답했다. 4·27 재보선 전 그를 부산시장 후보에 넣고 여론조사를 한 데 대해 “쓸데없는 일을 하셨습니다”라고 강한 부정 의지를 표출했던 것과는 톤이 달라졌다.

부산시장을 넘어 대통령직은 큰 자리다. 2012년 재집권하려는 야권의 입장에서야 가능성이 있다면 문 변호사 아니라 그 누구도 ‘징발’하려 들 것이다. 바라기는 문 변호사가 정치참여 5불가지론을 바꿔서 안 된다. 노 정객 JP가 50년 정치인생을 걸어온 뒤 내린 ‘정치는 허업’이라는 말을 꼭 새겨듣기를 기대한다. 얼마 전 작고한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왜 존경을 받았는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강렬 논설위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