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성천] 통신감청 남용을 막으려면
입력 2011-06-20 17:30
수사기관의 수사기법에 대해 국민은 애증을 갖고 있다. 피의자가 발견되면 구속부터 해놓고 털어보는 방식에 대해서는 인권유린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조사하고 석방한 아동성범죄 피의자가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왜 위험인물을 놔주었느냐고 거세게 비난한다.
통신감청이라는 수사기법도 양면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수사를 한다는 미명 아래 마구잡이로 국민의 사적 통화를 엿듣는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유괴됐다면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들의 통화내용을 감청해서라도 한시 바삐 구해야 한다는 데 아무도 토를 달지 않을 것이다.
결국 국민의 요청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감청을 하되 절대로 남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제는 이걸 통제하는 방법이다. 수사기관에 믿고 맡기면 결과는 보나마나 뻔하다. 반드시 남용될 것이다. 이는 선진국이라고 해서 달라지진 않는다. 그래서 통신감청과 관련해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몇 가지 통제장치들이 있다. 감청이 가능한 범죄, 감청을 허용하는 요건, 감청 절차를 제한하는 것이다.
감청장비의 보유 주체와 감청 주체를 분리해야 한다는 점도 아주 중요하다. 이는 감청을 당하는 사람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이다. 감청장비를 수사기관이 자체 보유하면 불법감청을 하게 마련인데, 당하는 사람이 모르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통제할 방법이 없다.
10여년 전부터 주요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이 제도의 도입을 근간으로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한 바 있다. 그러나 처리가 지연되다가 회기가 끝나 자동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도 거의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한나라당 주도로 제출됐으나 처리되지 못한 채 장기표류하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을 반대하는 쪽의 논리는 수사기관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맞는 말이다. 수사기관을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감청장비를 수사기관이 보유하지 못하게 하고 법원이 발급하는 영장에 따라 적법절차를 준수해 감청을 하도록 제한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이다.
그래도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은 감청을 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우선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할 국가의 기본 책무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또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상으로도 감청은 합법적인 수사방법이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감청장비를 개발하고 법원의 영장을 발급받아 감청을 실시한다면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단지 수사기관이 장비를 도입하지 않고 있을 뿐인데 만약 장비를 도입한다면 오히려 남용의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법안에 반대하는 야당은 표 몰이에만 신경 쓰지 말고 진정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성천 중앙대 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