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종회] 명품은 우리 안에 있다

입력 2011-06-20 17:31


“중요한 것은 훌륭한 옷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명품 인물이 아닐까”

얼마 전에 ‘샤테크’라는 듣도 보도 못한 용어가 연일 매스컴의 표면에 떠올랐다. 인천공항이 ‘샤넬 주의보’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샤넬 브랜드의 명품 핸드백이 너무 잘 팔려서 중고품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므로, 가격이 인상되기 전에 사두면 큰 차익을 볼 수 있다는 일종의 재테크 때문이다. 핸드백 1개의 가격이 수백만 원에 이르고 보면, 금전적 이익을 모든 일의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들의 표적이 될 만하다.

왜 이토록 물질만능주의의 표본과 같은 현상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일까? 정말 명품 핸드백을 들지 않으면 존중받는 명품 인물이 되지 못한단 말인가? 그리고 밀반입과 같은 탈법을 예사로 동원하는 형편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반의 건전한 상식과 균형 있는 교양 어딘가에 병이 나도 단단히 난 듯하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청빈을 귀하게 여기고 외형적 삶보다 인간의 올곧은 정신에 존중의 예를 다하던 오랜 미풍양속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버렸단 말인가?

문제는 각기의 사람을 두고 명품에 현혹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로 일도양단(一刀兩斷)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허영과 허위의식은 인간의 가슴속 깊은 자리에 매우 은밀하게 파고드는 교활성을 가졌다. 그러기에 L. 톨스토이는 ‘유년시대’에서 ‘허영심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깊이 파고드는 것이므로 매우 통절한 비애일지라도 이 감정을 쫓아내기는 힘들다’고 했다. 이를테면 우리 모두가 꽃은 아름다우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허영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명품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다. 미상불 누구나 그런 것을 한두 개씩 갖고 있기도 하다. 물건에는 마음이 없다. 그 물건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 따라, 물건의 주인이 되기도 하고 노예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의 체신과 통어력을 지키는 금도(襟度)가 있어야겠다는 뜻이다.

자신의 삶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 스스로의 신념에 충실한 사람에게 이 외화내빈(外華內貧)의 멍에는 덧씌울 공격의 자리를 찾기 힘들다. 자기 관리에 엄격한 사람도,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진정한 기쁨을 앗아갈 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B. 러셀이 ‘행복의 철학’에서 ‘자신감이 없는 데서 허영이 생긴다’고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작지만 단단한 자기 세계, 화려하지 않아도 소박한 자신만의 꿈이 있는 사람은 마침내 세간의 존중을 받는다. 우리 사회도 허영의 세태를 타매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보람과 가치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권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 국격과 상품이 굳이 외국 명품을 탐색해야 할 만큼 뒤처진 수준에 있는 것도 아니다. 분야별로 사정이 다르겠지만, 유럽이나 미주의 큰 도시 공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삼성과 LG의 광고 선전탑이다. IT 세계 최강국에 여러 산업 및 스포츠 종목에서 한국의 실력은 눈부신 진전을 이뤘다. 한반도의 허리가 갈라진, 인구 5000만명에 못 미치는 조그마한 나라, 내세울 부존자원이 없어 사람만이 재산인 나라가 세계 교역량 10위 부근에 이르렀으면 민족적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운송 위주의 기업에서 오래 일하다가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지인이, 미국 속의 진정한 한류는 40년 전 하늘길부터 열린 것 같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미국 내 한국 물류의 이동, 곳곳에 뿌리내린 한인공동체의 형성 등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설득력 있게 일러주었다. 유럽에 연착륙한 K팝의 아이돌 스타들이, 저 옛날 서구 대중문화 스타들의 방한 때 보인 한국민의 열광과 대비되어 새로운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진정한 명품은 우리 가운데 있고 더 핍진한 의미로는 우리 마음속에 있다. 외형의 미적 감각이 나타내는 부분적 차이에 인격을 거는 사고방식으로는, 유한한 삶의 여정에 진정 아끼고 지켜야 할 덕목의 핵심에 근접할 수 없다. 겉보기의 화려를 좇아 산다면 말릴 길이 없겠지만, 언젠가 인생을 냉정하게 결산할 때가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훌륭한 옷이 아니라, 옷 안에 숨어서 마침내 낭중지추(囊中之錐)가 될 명품의 사람이다.

김종회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