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아주 특별한 용기
입력 2011-06-20 18:07
마가복음 5장 25~34절
마가복음 5장에는 열두 해를 혈루증에 시달린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건강한 여성들의 월경조차도 부정하다고 배척했던 2000년 전 유대 땅. 그 절망의 땅에서 끊임없이 부정한 피를 흘려야만 하는 불치병을 앓던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지난 12년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허사로 끝나고 이웃들로부터도 배척을 당해 이제는 가진 것조차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차가운 차별의 벽에서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고 따돌림 당하며 12년의 세월을 한숨과 탄식, 절망으로 보내야만 했던 이 가련한 여인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어쩌면 생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소문난 예수의 행렬에 몸을 싣습니다. 본문에 나온 기적의 자리는 바로 이 여인이 가진 ‘희망과 간절함’에 있었다고 봅니다. 이젠 어떤 희망도 기대도 포기할 수 있었을 텐데 뜻밖에도 오늘 이 여인은 지치고 나약한 병든 육신을 끌고 희망의 행렬에 감히 동참하기로 작정하고 나섭니다. 생의 절망 한가운데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이 여인의 태도가 바로 하늘의 기적이 임하는 삶의 자리라고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유명한 기독교 심리치료자였던 칼 메닝거 연구소의 입구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Attitude is more important than the fact(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입니다).’ 현실이 어떠하든지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가 생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고 때론 놀라운 삶의 기적,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저는 이 여인의 간절한 태도를 감히 ‘아주 특별한 용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치유와 회복을 위한, 생을 살아내기 위한 아주 특별한 용기라고 말입니다. 이 존재의 용기가 이 여인을 살리는 생명의 힘, 존재의 힘, 곧 믿음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 여인은 행렬 속 무리에 끼여 제대로 예수님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이제는 뼈만 앙상한 창백한 손을 뻗쳐 예수의 옷자락을 잡았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그 여인의 손, 간절함의 손, 그 손을 뻗쳐 예수의 옷자락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재물, 사랑, 명예, 지식, 높은 자리 등. 그러면서 세상 것들로 가득채운 손으로 우리 영혼의 타는 목마름을 위해 하늘 자락도 붙잡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증언은 우리들의 손을 비울 때,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직 빈손으로, 간절함의 손으로만 하늘 옷자락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탐욕, 이기심, 애증의 손을 비우고 빈손이 돼 간절함의 손이 돼 예수의 옷자락을 잡을 때, 우리들 혼의 목마름, 영혼의 혈루증을 치료할 수 있는 하늘의 권능이 흐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가련한 여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용기 있는 삶에 응답하신 하늘의 기적을 모든 이들이 알게 하기 위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삶의 평안과 건강!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웰빙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복음서는 한 가련한 여인에게 다가온 하늘의 기적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석환 목사 (연세대 신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