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인의 눈에 비친 성공회 예배
입력 2011-06-20 15:26
[미션라이프]19일 오전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박종화 목사). 이날의 예배는 여느 때와 달랐다.
“징~ 징~ 징~” 첨탑의 종도 차임벨도 아닌 징소리가 예배 시작을 알렸다. 차분하게 예배를 준비하던 교인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배당 입구 쪽에서 신부들이 일렬로 들어온다. 대열 맨 앞엔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가 높이 들렸다. 그 뒤를 순서를 담당한 신부들이 따랐다.
한 신부가 강단 앞 탁자 위에서 향로를 흔든다. 그것도 몇 번이 아니고 수십 차례나. 예배집전자이자 설교자인 유시경(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신부 면전에다가도 향로를 흔들었다. 전염병 등 불길한 것을 퇴치하기 위한 중세 때 의식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향한 기도문과 죄 고백을 한 뒤 찬송을 불렀다. 사제의 기도는 말이 아닌 노래로 올려졌다. 장엄한 개회예식은 이렇게 끝을 맺고 말씀의 전례가 시작됐다. 신·구약 성경을 같이 읽는다. 전세계 성공회가 매주 비슷한 본문을 쓴다. 성시(聖詩)도 교독(交讀)이 아니라 교송(交頌)이다. 신부가 한 줄을 노래하면 교인들이 한 줄을 뒤따라 노래했다.
성가대의 성가가 진행되는 동안 신부들이 다시 성서를 앞세우고 강단 앞으로 나온다. 오늘 설교 본문이 되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에겐 익숙한 마태복음 28장 16~20절을 공동번역성경으로 낭독했다. 한 절 한 절 끝날 때마다 성호를 긋고 앉은 채로 큰 절도 했다. 본문 전후엔 사제와 교인들의 노래도 이어졌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하소서.”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찬미합니다.”
유 신부의 설교가 시작됐다. 한국 사회와 교회의 분열을 통렬하게 지적한 유 신부는 곧바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한 주님을 섬기고, 한 신앙을 고백하는 한 형제·자매입니다. 비록 예배 습관이 조금 다르다 할지라도 함께 만나 교제하고, 성찬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이 분열의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분명한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공회의 5가지 선교 목표도 설명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선포, 새신자 확대, 사랑의 봉사, 불의한 사회구조 변혁, 그리고 창조세계 보존이다. 서울주교자성당과 경동교회가 비록 성공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로 교파는 틀리지만 사명은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유 신부는 “두 교회는 이 사명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교회로 손을 잡았다”며 “내년 만날 때까지 이 목표를 위해 더욱 매진하자”고 당부했다.
설교가 끝나자 신앙고백이 이어졌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장로교인들에겐 낯선 ‘니케아신경’이다. “한 분이시며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중략) 죄를 용서하는 하나의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후세의 영생을 믿고 기다리나이다. 아멘.” 세상의 정의와 평화, 가난한 사람과 병자, 환란 당한 이들을 위한 대표기도가 이어졌다.
봉헌 시작과 함께 한 신부가 또 다시 강단 앞 탁자에 향로를 흔들어 뿌렸다. 설교자에게도 뿌린 뒤 이번엔 모든 교인들을 향해 향로를 흔들었다. 은은한 향은 순식간에 예배당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교인들은 자신의 정결을 피부로 느끼는 듯 깊은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말씀의 전례가 예배의 끝이 아니다.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의 전례가 남았다. 찬송과 말씀, 주의 기도가 있은 뒤 교인들은 한 사람씩 강단 앞으로 나아가 떡과 포도주를 받아 마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살과 피를 접한 교인들은 ‘영성체 성가’를 부르며 다시 신앙을 고백했다.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이 성사의 은혜로써 항상 서로 사랑하며 한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서로를 축복하는 기도를 사제와 교인들이 번갈아 고백하며 파송예식이 시작됐다. 한 음계로 된 이 노래는 노래 같으면서도 기도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광고가 끝난 뒤 파송성가가 울리는 가운데 신부들은 천천히 일렬로 퇴장했다. 입장할 때처럼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운 채.
교회 마당으로 나온 사제들은 서로서로 “수고하셨습니다”라며 악수를 나눴다. 11시 30분에 시작된 예배가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으니 ‘수고하셨습니다’는 인사는 말 그대로였다. 이어서 교인들이 하나둘 예배당을 나오며 사제들과 인사를 나눴다.
성공회 예배를 접한 장로교인들의 반응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처음 성공회 예배를 드렸다는 20대 청년 강한별씨는 “징을 치고 향냄새가 나는 게 생소하긴 했지만 웅장하고 장엄한 예배를 통해 ‘예배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형규 권사는 “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보고 듣고 만지는 오감을 통한 예배를 오늘 맛볼 수 있었다”며 “대한민국에 이런 예배가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고 밝혔다.
같은 시간 서울 정동 서울주교좌성당에서는 경동교회 안미정 목사가 장로교 예배를 인도했다. 경동교회-성공회 서울주교자성당 교환예배는 올해가 11번째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