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커피 한 잔의 행복
입력 2011-06-19 17:42
가만히 보면 절약정신이 강한 사람에게도 한두 가지쯤은 사치를 하는 것이 있다. 조금은 과한 듯하게 지불하고도 소유하고 싶은 것. 내게 허락된 것 중의 하나는 커피다.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커피를 무척 좋아한다. 아침에 꼭 커피를 마시고서야 출발신호를 받은 듯 일을 시작하는 습관이 있다.
계란 노른자위를 동동 띄운 모닝커피를 팔던 다방이나 감미로운 팝송이 흘러나오던 대학가의 음악다방은 흘러가고 지금은 화려한 인테리어로 꾸민 카페나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밥값보다도 비싼 커피를 팔고 있다. 많은 커피전문점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피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요즘은 커피미음가도 많고 창조적 감성을 맛으로 담아낸다는 자부심과 함께 전문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바리스타를 꿈꾸는 사람도 많다.
고소하고 달콤하며 신맛과 쌉싸래한 맛을 내기도 하는 커피의 여러 가지 맛은 인생의 맛과 같다. 일회용 봉지커피를 뜯어 종이컵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뜯어낸 봉지로 휘휘 저어 건네는, 소박한 인간미가 담긴 커피가 있는가 하면 수마트라섬에 사는 루왁이라는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한 알맹이로 만든 아주 독특한 향을 내는 고가의 루왁커피도 있다. 그 어느 것이든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사람과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음료 그 이상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소설가 리처드 브로티칸은 ‘때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가져다 주는 따스함에 관한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커피는 어느 때 어느 장소와도 잘 어울리는 음료다. 여름날 땅바닥을 두들기며 강하게 내리는 소낙비를 바라보면서 마시는 커피, 조용한 찻집에서 폭신폭신 쌓여 있는 흰눈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햇살 가득한 노천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며 여유롭게 마시는 커피, 여행 중에 우연히 발견한 아담한 찻집에 들어가 잠시 여독을 풀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모두 삶에 여유와 행복감을 준다.
쉽사리 글이 써지지 않는 답답함과 적막이 감도는 어두운 밤에는 커피가 진하게 생각난다. 이때 투박하고 묵직한 잔에 담긴 따뜻한 커피 한 잔은 몸과 마음을 적셔주어 마른 감성이 해갈되고 만족감을 주는 좋은 파트너가 된다. 나의 반려견 예삐와 은별이를 데리고 아파트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 목이 마를 때 공원 옆 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가서 아이스커피를 마시면 시원하게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는 청량감에 온 몸의 세포가 다 눈을 뜨는 것 같고 호사한 기분이 든다.
커피에는 그윽한 향과 풍부한 맛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정신을 각성시키는 카페인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깊이 있는 원두의 향을 즐길 수 있게 되면 천천히 길을 걷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커피 한 잔이 내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마음에 윤기를 더해주고 여유와 행복감을 안겨주니 커피에 대한 사랑은 계속 끊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세원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