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창호] 벤쿠버 폭동과 아이스하키

입력 2011-06-19 22:26

캐나다인에게 폭동과 시위는 매우 낯선 풍경이다. 어릴 때부터 예절 교육이 사회구성원 대다수에게 배어있고 갈등 요소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적어서다. 그런 나라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밴쿠버에서 최악의 폭동이 일어났다. 온 도시가 시위대에 점령되고 상점들은 약탈당했으며 길거리 자동차들은 불타거나 짓밟혔다. 우스꽝스럽게도 시위대의 구호는 친정 아이스하키팀 ‘캐넉스 만세’였다. 정치·사회적인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16일 밤 홈구장에서 열린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챔피언결정전(스탠리컵) 7차전에서 캐넉스가 미국의 보스턴 브루인스에 패배하자 하키팬들은 폭도로 돌변했다. 이게 처음이 아니다. 이 팀이 1994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뉴욕 레인저스에 3승4패로 무릎을 꿇자 온 도시가 마비됐다. 그땐 숨진 사람도 있었고 대형 건물 하나가 통째로 불타기까지 했다. 캐넉스는 창단 이래 거의 매년 지구우승권에 들었다. 브루인스나 레인저스는 항상 중위권과 하위권을 맴돌던 약체였다. 그런 두 미국 팀이 자신들의 팀을 상대로 첫 스탠리컵을 들어올렸으니 밴쿠버 시민들의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미국인에게 캐나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가 “소프트 피플, 하키 크레이지 네이션(Soft People, Hockey Crazy Nation)”이라고 대답한다. 평소엔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이 아이스하키라는 단어만 나오면 완전히 변모한다는 뜻이다.

아이스하키는 과격한 몸싸움을 허용하는 몇 안 되는 스포츠라 시합 중 선수끼리 주먹다짐을 벌이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얼마 전 NHL은 큰 부상이 속출하자 불필요한 몸싸움과 육박전을 퇴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캐나다 하키팬들은 “무슨 재미로 아이스하키를 하느냐”며 강력 반대했다. NHL은 꼬리를 내렸다. 전체 선수의 60% 이상이 5세 이전에 하키를 배운 이 나라 국적소지자인데 이 같은 반대를 무시할 경우 리그 존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느슨한 이민법을 가진 이 국가는 얼마 전까지 1가구 1자녀 강제정책을 펴던 중국을 인권 유린국으로 지정해 불법입국 중국인이 “1자녀 정책이 싫어 망명한다”고 하면 무조건 받아줬다. 애완견한테도 건강보험을 적용할 정도로 캐나다의 관대함은 유명하다.

이처럼 과격과는 담을 쌓은 듯한 캐나다인들이 아이스링크에 나서기만 하면 ‘야수’로 돌변하는 이유가 뭘까. 정말 인간의 감춰진 폭력 본성은 결코 뿌리 뽑아지지 않는 것일까.

신창호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