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꼽추

입력 2011-06-19 17:45

김기택 (1957~ )

지하도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려

그 노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뿐이었다

…… (중략) ……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 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비정함을 이보다 더 절제 있게 노래한 시는 없을 줄로 안다. 감정을 배제하고 지하도에서 구걸하는 노인을 명징하게 관찰하고 있다. 그 속에 눈물이 있다. 독자를 사로잡는 이유다. 노인은 죽었지만 부활한 듯 신화적인 느낌마저 준다. 이 시를 읽고 공정(公正)을 얘기하자.

임순만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