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1-06-19 17:28


(50) 순정의 여인들 - 예수 최후의 순간까지 헌신

예수님의 죽음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것은 여인들이었다. 남정네들이 아니었다. 마가복음 15장 40∼41절은 이렇게 전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돼 있지 않아서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남정네들 곧 열두 제자 명단에 들어간 사람 가운데 십자가 처형 장소에 끝까지 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여인들은 거기 있었다. 끝까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예수의 시신을 넘겨받았다. 시신을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모시고 돌을 굴려 입구를 막을 때까지 여인들은 끝까지 따랐다. 47절은 이렇게 전한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예수님이 숨을 거둔 때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요셉이 시신을 무덤에 모실 즈음 해가 졌을 것이고 곧 안식일이 시작되었다. 다음날 곧 토요일 해질 때에야 안식일이 끝나고 그래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여인들은 예수님 시신에 발라드리려고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향품을 사러 갔다. 16장으로 넘어가는 상황이 그렇게 기록돼 있다. 토요일 저녁 해가 지는데 급히 가게로 갔다.

안식일 내내 이 여인들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향품을 사지 못할까봐 얼마나 걱정했을까. 예수님이 살아계시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한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대한 정성에도 끝까지 헌신한다. 향품을 사다놓고서 밤새도록 눈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웠을 여인들이 안식일 다음날, 오늘날로 하면 주일 새벽에 무덤으로 간다. 16장 2절을 보라.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이 여인들을 가리켜 ‘순정의 여인들’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들이 가진 정이 애틋하고 애절하고 애처롭다. 순수하고 순결하고 순박하다. 여인들이 죽음과 부활 사이의 상황을 잇는다. 사람 사는 세상의 지선지고(至善至高)한 덕목 순정으로 여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장면과 부활의 새벽 사이에 스토리를 채우고 있다. 예수님 시신이 무덤 속에 모셔진 뒤 밤이 지나는 시간을 포함한 안식일 하루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안식일에서 그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또 하룻밤 정황이 어떠했는지, 여인들 덕분에 그 시간이 구체적인 스토리와 함께 여기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있다. 순정의 여인들이 온몸으로 써내려간 스토리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마음이 중심이다. 사람 존재가 움직이는 그 모든 중핵이 마음이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리고 사람이 하늘 아버지를 만나고 얼싸안을 수 있는 것도 마음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한다. 그 어떤 업적보다 마음의 순결함이 먼저다. 하늘 아버지에 대한 신앙은 근원적으로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면 목숨과 뜻도 이미 바친 것이다. 마음이 믿음의 좌소(座所)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복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이 완악하고 둔한 것을 그토록 안타까워하셨다.

여인들을 보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마음이 착하고 깨끗하고 밝게 되는 것이다. 부활이 있기 전까지는 세상에 순정만한 것이 없었다.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