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이 눈 크게 떠야 ‘병사 생명 구하기’ 가능합니다

입력 2011-06-19 17:35


‘軍 자살예방 교관 프로그램’ 고안한 육성필 교수

지난 7년간 5일에 1 명 꼴로 군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석용(한나라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군인은 82명. 지난 7년간 한 해 평균 75명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스스로 버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비보가 들려오고 있다. 지난달 19일엔 인천에서 휴가 나온 이병이, 30일에는 강원도 전방 초소에서 근무하던 이병이 목숨을 끊었다. 군대 내 자살 예방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 원남동 ‘용문상담심리 대학원대학교’에서 만난 육성필(44·경동교회 집사) 교수는 현재 군에서 시행되고 있는 ‘한국군 자살 예방 교관 프로그램’을 고안한 사람이다. 이는 전 군의 간부와 병사들에게 교육시키기 위해 만든 ‘자살 예방 전문가’ 양성 과정이다. 자살 전 보이는 징후 파악하기, ‘자살을 생각하고 있느냐?’라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면담 기회 만들기, 이유 경청하기, 전문가에게 의뢰하기 등, 전문 용어로 ‘QPR’라 부르는 방식을 따른다.

육 교수는 “군대에서는 결정적인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자살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와 격리된 환경, 꽉 짜여진 일상과 엄격한 상명하복식 질서 속에 있다 보면 각자 가지고 있던 심리적 약점들이 급격히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 군인의 자살자 비율은 민간인의 3분의 1 정도입니다. 그러나 20∼30대 중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만이 모인 그룹이라는 인식 때문에 크게 느껴지는 것이죠.”



그 자신도 ‘군인의 자살률이 0%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이처럼 군인 자살 예방 전문가가 된 것은 상당 부분 신앙의 영향이었다. 심리학 박사 과정에 있던 1990년대 중반, 국방부에서 군 인성검사 연구원 일을 병행했는데 그때도 군인들의 자살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제 동생 같은 장병들이 왜, 어떻게 목숨을 끊었는지를 매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견딜 수 없이 답답해졌어요.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더니 ‘내가 너를 위해 죽은 것 같이 너도 그들을 섬겨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인성검사를 통해 높은 스트레스, 우울증 등 자살 위험요소를 가진 장병들을 분류, 상담·치료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러나 자살률은 쉬이 줄지 않았다. 학위를 마치고, 2002년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대학 자살예방연구소 연구원으로 갔을 때 비로소 그 원인을 찾아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등의 사례를 연구하며 군 자살 예방에는 주변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인성검사를 통한 파악에 한계가 있고, 다행히 병사가 상담과 치료를 받더라도 돌아가면 변함없는 부대 환경 때문에 재발할 가능성이 큰 것이죠.”

그가 개발한 프로그램이 군대에서 전면 실시된 것은 이제 겨우 2년. 성과를 논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육 교수는 “지난해 교육받은 장병 1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보니 이 중 70명이 동료의 자살 관련 행동을 발견했고, 그중 48명이 자살을 예방했다고 했다”면서 효과를 자신했다.

얼마 전에는 강원도에서 복무하는 한 병사로부터 “이 프로그램 덕분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접었다”는 감사 전화를 받기도 했다.

“이 병사가 죽고 싶었던 원인은 ‘코피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장병들의 건장한 몸집 속에 숨겨진 연약함을 발견할 때마다 더 열심히 하자고 결심하게 됩니다. 실제로 군 내 자살률이 ‘제로’가 될 때를 목표로 말입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