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상온] 시노포비아(Sinophobia)
입력 2011-06-16 18:14
‘종주국’ 노릇하는 中의 오만
중국이 우리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서울 명동 등 쇼핑가에는 ‘큰손’으로 통하는 중국 관광객들이 넘쳐흐른다. 일부 대학 캠퍼스도 중국 유학생들로 득실거린다. ‘차이나 머니’의 유입도 갈수록 증가 추세여서 지난해 국내 채권시장에 순유입된 중국 자본은 4조7000억원에 달했다. 미국 등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올 들어 5월까지의 순유입액은 1조7193억원. 국가별 1위다.
중국 자금의 국내 부동산 투자도 1년 새 5배로 늘었다. 올 1분기 말 현재 중국인이 보유한 국내 부동산은 총 4114건, 약 1조4400억원어치로 이런 증가 추세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그런가하면 지역·국가별 교역 경상수지에서 지난해 흑자 규모가 가장 큰 곳도 중국이었다. 전년에 비해 약 150억 달러 늘어난 528억3700만 달러.
이런 ‘중국 바람’을 놓고 일부에서는 외국인 투자 다변화라든지 외자 유치 및 외환수입 증대를 들어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 교역의 중국 편중 심화에서 보듯 장기적으로 한국이 중국 경제에 예속되는 거나 아닌지 걱정스럽다.
아니, 경제적 예속만이 아니다. 기우라고 핀잔 받을지 몰라도 이러다가 글로벌 차원에서 한국, 나아가 한반도가 결국은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중국의 완전한 영향권 안으로 귀속될 우려는 없는 것일까? 사실상 중국의 제후국, 속국 노릇을 했던 옛날처럼 돼버리는 것은 아닐까?
마땅히 경계하고 대비해야
미상불 중국이 한국이나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미 마치 종주국이나 된 듯하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중국밖에는 기댈 곳이 없어진 북한의 경우 여러 예를 들 것도 없다. 지난해 5월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합의된 사항, 곧 ‘중국과 북한은 내정과 외교에서 중요 공통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게 소통해 나간다’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외교는 물론 내정까지 중국과 협의하란 뜻인데 동등한 주권국가끼리라면 그럴 수가 없다.
한국에는 어떤가? 말로는 ‘전략적 동반자’라면서도 중국의 오만하고 일방적인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가장 최근에만 해도 중국은 지난 13일 베이징 공항에서 비행기만 갈아타려던 북한 인권운동가 서경석 목사를 몇 시간 동안 임의 억류했다. 또 지난달 25일에는 중국 쪽 백두산 인근에서 백두산 화산활동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디지털 카메라 메모리카드를 강제로 빼앗아갔다.
그러나 이런 ‘모욕’은 약과다. 지난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 방한한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느닷없는 방한 통고 및 대통령 면담 요청 등 갖가지 ‘무례’를 저질렀다. ‘천자(天子)나라의 사신’? 그에 앞서는 우다웨이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주한 대사 시절 “한·대만 간 직항로 개설은 중국과 사전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독’?
중국은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게 지도자들의 입버릇이다. 그러나 남사군도나 센카쿠 열도 문제 대처 방식, 동북공정 등을 보면 중화 패권주의가 여실히 느껴진다. 이 같은 중화 패권주의는 요즘 중국에서 빈발하는 소수민족이나 농민공들의 시위사태를 덮고 국민의 눈길을 외부로 돌리게 하는 데 이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많은 한국인은 중국(인)을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를 몇 년 먼저 시작해 발전이 다소 앞섰다고 중국 무서운 줄 모른다. 몇 백년간 한반도를 속방으로 거느렸던 중국이 한국과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뻔하다. 중국이 남북한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중국의 전통적 변방정책인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시노포비아(중국 혐오증 또는 중국 공포증)까지는 아니라 해도 마땅히 중국을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