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은영] 양이 엄마를 위한 약속
입력 2011-06-16 18:13
밤에 아파트 화단 옆을 지나는데 길고양이가 홱, 지나갔다. 깜짝 놀라 욕을 하려다 꿀꺽 삼켜버렸다. 양이 엄마인 선배 두 명이 동시에 나를 째려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선배는 아흔이 넘는 길고양이를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파트 단지를 돌며 저녁밥을 챙긴다. 아흔이라니! 나는 입이 쩍 벌어졌다. 아파트 주민이 뭐라 안 하냐고 했더니 미친 여자라는 욕도 한다며 웃었다. “그런 말까지 들으며 왜 그 일을 해?” 내 물음에 선배는 생명인데 그냥 굶어죽게 둘 수는 없다고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다른 선배는 좀 작게 스무 마리 정도를 돌보지만 그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거기다 동물보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누구에게나 모피 옷을 입지 말라고 소리 높인다. 그러다보니 모피 옷이 있는 후배들 중에서 투덜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지난겨울 100년 만의 추위라던 날, 모임에 늦게 온 한 후배가 비시시 웃으며 변명을 했다. 너무 추워 모피코트를 입고 나왔다가 그 선배도 온다는 생각에 되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는 거였다. 이건 그나마 귀여운 투덜거림이다. 몇몇 후배는 혼자 안 입으면 되지 다른 사람 마음까지 불편하게 한다며 기분 나빠하기도 한다.
모피는 화려해 보이고 부티가 난다. 그걸 입으면 나도 화려하고 부티가 날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런 매력 때문에 내 주위에는 아직 모피사랑 친구들이 훨씬 많다. 정말 따뜻해서 입기도 하고, ‘너 입는데 나는 못 입냐?’는 경쟁 심리에서 입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선진국에서는 모피 수요가 줄어드는데 우리나라 모피 수요는 몇 년째 늘고 있다고 한다. ‘혼사 때 너 받았니? 그럼 나도 받아야지’ 하는 잘못된 예단풍습도 모피 수요 증가에 일조한다. 아들을 지금까지 키워서 장가보내는데 모피 정도는 받아야 되지 않겠냐는 친구도 있을 정도니까. 나 역시 모피 옷을 보면 마음 불편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화려함에 끌려 몸에 걸쳐보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강 인공섬인 세빛둥둥섬 개관행사로 열린 모피쇼와 모피쇼 반대 시위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모피코트 한 벌에 밍크가 60∼80마리, 여우는 15∼20마리가 들어간다니! 만약 내가 모피코트를 입는다면 밍크 70마리 시체를 주렁주렁 걸치고 여우 20마리 시체를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이 된다. 꿈에 그 동물들이 떼로 덤벼들면 어쩌나 겁이 더럭 난다. 모피 옷을 입고 싶은 생각이 쑥 들어가면서 ‘생존이 아닌 취향이나 패션을 위해서 생명을 죽여선 안 된다’는 동물단체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물도 신의 창조물이란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동물 학대 역시 신의 뜻을 어기는 행동 같아졌다.
난 채식주의자도 동물보호주의자도 아니다. 고양이나 개를 키우는 것도 안 좋아한다. 그러니 양이 엄마처럼 아파트를 돌면서 고양이에게 밥을 줄 자신은 없다. 다만 이제라도 모피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고 길고양이를 미워 말리라. 양이 엄마의 수고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오은영(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