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 빌려 ‘원정 교습’, 단속반 닥쳐도 “자습” 발뺌… 학원가 심야교습 요지경

입력 2011-06-15 18:41


지난 14일 오후 10시 학원들이 대거 몰린 서울 중계동 은행사거리 일대. 기말고사를 앞둔 중·고등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학원들은 문을 닫고 있었다.

이때 일부 학생들이 비상구 문을 통해 다시 학원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10시10분쯤 한 학원 앞에 학생 10여명이 도착했다. 학원 관계자는 “빨리빨리 들어와. 셔터 내려야 해. 시간 좀 지켜”라고 외치며 학생들을 건물 안으로 황급히 들여보냈다. 학원 문은 굳게 닫혔고 창가의 커튼은 내려졌다. 그러나 커튼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학생들은 밤 12시가 돼서야 나왔다.

‘서울시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에 따라 서울시내 학원들은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영업할 수 있다. 이 시간을 어기고 교습·자습을 한 학원은 1차 10점, 2차 20점의 벌점을 받는다. 그래도 계속 벌점을 받아 66점이 넘으면 학원 등록이 말소된다.

그러나 학원들은 각종 편법을 쓰며 서울시교육청과 경찰의 눈을 피해 불법 교습을 하고 있다. 가장 흔한 수법은 셔터 문을 내리고 안에서 몰래 강의하는 것이다. 방학동의 한 학원 강사는 “단속이 들이닥쳐도 사람이 없는 척하고 문을 안 열어주면 그만”이라며 “그러나 더욱 조심하기 위해 조만간 집으로 학생을 불러서 교습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 2시까지 영업 가능한 독서실을 이용하는 수법도 있다. 중계동의 한 학원은 독서실을 만들었다. 이 독서실은 일반 독서실과 여러모로 달랐다. 15일 자정쯤 이 독서실이 있는 건물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는 것은 작동이 안 되고, 내려오는 것만 가능했다. 독서실이 있는 층의 계단 비상구 문은 닫혀 있었다. 학원에 전화를 걸어 학원생의 이름을 말해야 문을 열어줬다. 오전 0시30분쯤 독서실에서 나온 학생은 “독서실에 선생님이 남아 있어 모르는 것을 가르쳐준다”면서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북부교육지원청은 한 달 전 이 학원이 불법 교습을 한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을 덮쳤지만 학원 측은 “학생들이 독서실에서 자습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다른 학원 관계자는 “그 학원은 자습실을 독서실로 등록해 심야 영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계동 일대에서는 불법 교습 학원과 손을 잡고 학원생을 독서실로 유치해주면 독서실 휴게실에서 교습을 허락하는 사설 독서실도 적지 않다. 한 독서실 원장은 “우리 독서실은 휴게실이 커 밤늦게까지 교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단속을 담당하는 일선 교육지원청은 현장 적발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원들이 문을 닫고 영업하는데 수사권이 없어서 마음대로 못 들어간다”면서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면 교습·자율 흔적을 다 치워버린 뒤라 적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