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왕이 사랑한 앵두

입력 2011-06-15 17:47


조선왕조실록 문종 2년 5월 14일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세종께서 철을 기다려 후원의 앵두를 올리니, 이를 맛보고 기뻐하시기를 ‘외간(外間)에서 올린 것이 어찌 세자의 손수 심은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아들의 효심에 흐뭇해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복숭아 모양에 꾀꼬리가 좋아한대서 앵도(櫻桃)라고 적었다.

성종 때의 기록은 사뭇 다르다. 왕이 두 소반을 승정원에 주면서 “하나는 장원서(掌苑署·원예를 맡은 관아)에서 올린 것이고 하나는 민가에서 진상한 것이다. 민가의 것이 더 살찌고 윤택하니 장원서 관원의 책임을 물어라”고 말하였다. 기율이 살벌했는지, 왕의 심기가 불편했는지 알 수 없다.

잘 익은 앵두는 살이 통통 쪄야 하고 색깔이 붉되 속이 비칠 정도로 맑아야 한다. 궁궐이든 민가든 수분이 많고 양지 바른 우물가에 많이 심었다. 그곳은 늘 정보가 넘치고 온갖 작당이 이루어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구중심처의 여인들은 우물가 바람을 어떻게 관리했을까.

손수호 논설위원 shsh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