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당뇨병이 감기와 동격?
입력 2011-06-15 17:47
보건복지부가 10월 시행을 목표로 추진 중인 ‘경증 질환 외래 환자 약제비 차등화’ 방안을 두고 말들이 많다. 이 제도는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으로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을 경우 약값의 본인 부담률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동네 병·의원에 가든, 종합병원 혹은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든 처방받는 약값의 30%만 본인이 내고 나머지는 국민건강보험에서 부담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정부가 잠정 확정한 51개 경증 질환의 경우 종합병원에서 진료 받으면 약값의 40%, 상급종합병원에선 50%를 환자가 내야 한다. 다시 말해 가벼운 질환임에도 큰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에게 10∼20%의 돈을 더 내게 해 발길을 끊게 만들고, 대신 동네 병·의원으로 환자들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감기만 걸려도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들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줄이고 위축된 동네 병·의원도 살리겠다는 차원의 고육지책으로, 큰 틀에서 보면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경증 질환 분류에서 질병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검토가 이뤄졌는지 의심스럽다.
51개 경증 질환에는 감기, 소화불량 등 충분히 납득할 만한 ‘가벼운 질환들’이 다수 포함됐다. 그런데 여기에 만성질환인 ‘2형 당뇨병(인슐린 비의존형)’이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당뇨병이 감기처럼 가벼운 병이냐는 것이다. 복지부는 당뇨병이 단순히 ‘병·의원 다빈도 질환’이라는 이유로 경증 질환에 포함시킨 듯하나 행정편의적 결정이란 느낌이다.
경증은 간단한 의학적 치료를 통해 회복 가능하고 회복 후 장·단기적 후유증이나 합병증이 생기지 않는 질환을 뜻한다. 그런데 당뇨병은 관리를 잘 못하면 합병증 위험이 커진다. 신장투석의 40%, 시각 장애의 30%가 당뇨 합병증으로 발생한다.
게다가 이런 합병증은 환자 개인의 관리뿐 아니라 가족과 의료진, 영양사, 사회복지사 등이 팀을 이뤄 함께 노력해야 막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이 같은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당뇨를 전문 진료할 수 있는 동네 병·의원은 대도시에서도 한두 곳에 불과하다. 복지부 안대로 시행된다면 이런 인프라를 갖춘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하려면 환자가 자기 부담을 늘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중증 질환을 동반한 당뇨병의 경우 같은 질병이라도 당뇨 합병증과의 상관관계에 따라 약값 본인 부담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반 급성신부전 환자가 대학병원을 방문할 경우엔 30%의 약값만 내면 되지만 당뇨 합병증으로 생긴 급성신부전 환자가 대학병원에서 진료 받으면 약값을 50% 부담해야 한다. 같은 질병으로 같은 의료기관에서 진료 받는데 당뇨병 여부에 따라 약값을 더 내고, 덜 내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2중으로 불이익을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은 현재도 더 많은 진료비를 내고 있다. 진료비의 환자 부담률은 의원 30%, 병원 40%, 종합병원 50%, 상급종합병원 60%로 큰 병원으로 갈수록 높은데 당뇨 환자들은 여기에 약값까지 덤터기를 쓰는 셈이다. 당장 당뇨 환자들 사이에 “차라리 암에 걸리는 게 낫겠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암 환자는 진료비의 5%만 자기가 부담하면 되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약 350만명의 당뇨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97%가 2형 당뇨병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당뇨 환자들이 감기 환자와 동격으로 취급받게 된 셈이다. 2009년 통계에 따르면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전체의 5위다. 복지부 안대로라면 경증 질환이 우리나라 다섯 번째 사망 원인이 된다는 얘기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복지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건강권과 보건 향상이다. 한데 지금은 건보재정 적자 보전에만 급급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복지부가 기획재정부는 아니지 않은가.
민태원 문화과학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