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으로 본 기독교 100년] 순한글 세로쓰기 세계 지리 교과서
입력 2011-06-15 17:56
‘사민필지’는 헐버트(H B Hulbert·1863∼1949)가 쓴 세계 지리 교과서로서 순한글 세로쓰기로 되어 있다. 1889년쯤 나온 이 책은 제1장 지구, 제2장 유럽, 제3장 아시아, 제4장 아메리카, 제5장 아프리카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태양과 지구, 자연 현상의 원리, 인간의 출현과 이동 등을 설명하고, 2∼5장은 각 대륙의 지리 정보를 간략히 살핀 다음 각국의 지형과 기후, 산업과 교역, 정치제도, 군사, 인구와 민족, 종교, 교육, 풍습 등을 소개한다.
따라서 이 책은 개항 이후 외국과의 교류가 시작된 시기에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하는 창문의 역할을 해주었다. 젊은 관료와 양반 자제들을 교육하고자 1886년 국가에서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육영공원’의 교재로 펴낸 이 책은 중국 중심의 닫힌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했던 학생들에게 커다란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나아가 지식층 전반에서 주목을 받아 1895년에는 한문본(‘士民必知’, 백남규·이명상 공역)이 나올 정도였다.
저자는 육영공원의 설립과 함께 교사로 한국에 온 이래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언더우드가 주관한 ‘한영자전(韓英字典)’의 편찬에 참여하고, 언론에 ‘한글’과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알리는 글을 쓰고 인도의 드라비다어와 한국어를 비교하는 학술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 역사의 독자성을 인정하며 자주 독립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방안으로 1905년 ‘대한력?’를 펴냈다. 더욱이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고 나라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한국의 모습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06년 ‘대한제국멸망사’(The Passing of Korea, 1973년 신복룡 번역)를 영문으로 썼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금은 자신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만 장차 이 민족의 정기가 어둠에서 깨어나면 ‘잠이란 죽음의 가상(假像)이기는 하나 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한국 국민에게 바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민족 독립을 위한 방법으로 교육을 강조하며 “한국은 교육에 투자된 자본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확실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곳”이라고 예언했다.
우리는 10년 전만 해도 한류 문화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열광시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헐버트는 이미 100년 전에 우리의 민족정기와 문화적 잠재력을 알아내어 그 비상을 예견했으니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헐버트는 5년간의 육영공원 교사 임기를 마치고 1891년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2년 후 감리교 선교사 자격으로 다시 입국하였다. 그리고 삼문출판사의 책임을 맡고 영문 월간지 ‘코리아 리뷰’를 발행하는 등 출판언론인으로 크게 활약했다. 동시에 볼드윈교회(현 동대문교회)에서 목회했고 YMCA 창립을 주도했으며 배재학당, 관립중학교(현 경기고), 한성사범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895년 을미사변 후에는 고종의 신변 보호와 자문 역할을 맡았다. 1907년 고종의 밀명을 받고 네덜란드로 가서 이준 열사 등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사건을 빌미로 헐버트는 일본제국에 의해서 미국으로 추방되고 말았다. 그는 미국에서도 곳곳을 다니며 일본의 침략행위를 비판하고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1949년 정부 수립 1주년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은 헐버트를 국빈으로 초청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며 87세의 노구를 이끌고 40여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주일 후인 8월 5일 별세했고 서울 합정동 양화진 묘소에 안장되었다.
부길만 교수(동원대 광고편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