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파이터 병마를 KO시키다… 죽음 문턱서 무술인으로 민경찬군의 장애 극복기

입력 2011-06-15 18:11


또래 친구들보다 유달리 왜소하고 작은 아이. 불뚝 튀어나온 배를 한 손으로 받치며 힘겨운 모습을 하는 아이는 뭐가 좋은지 친구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까르르까르르 웃어댄다. 그 모습을 유치원 한쪽 구석에서 바라보는 어머니는 안쓰러움과 죄책감에 가슴이 먹먹하다. ‘저 아이에게 미래가 있을까? 하루하루 살아주기만 해도 좋은 내 귀한 아이.’ 그땐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민창기(52·인천 부평격투기연합회장)·김미희(52·인천 온세계교회)씨 부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경찬이를 바라보며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깨질까 노심초사했다. 그랬던 경찬이(19·대학생)가 합이 10단의 무술인으로 거듭났다. 경호원을 꿈꾸며 5개월을 제외하고 6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술 연마에 푹 빠져 산 경찬이. 기적을 일궈낸 가족을 14일 인천 논현동에서 만났다.

불안한 출발

“저희 아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간이 좋지 않았어요. 급기야 당원병이란 희귀병 진단을 받았어요.”

경찬이 아버지의 말이다.

1986년 11월 부부는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서 결혼했다. 5년이 다 돼가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시기만을 기다리던 김씨는 새벽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목사님은 성전에 꽃꽂이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럼 축복을 받을 거라고. 정성을 다해 성전에 꽃꽂이를 했다. 신기하게도 아기가 생겼다. 임신 중에도 새벽기도는 빠뜨리지 않았다.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이상한 말씀을 들었다.

“아기가 간이 좋지 않구나.”

졸며 기도해서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그 말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불안했다. 8개월부터는 뱃속에서 아기가 안 큰다고 많이 먹으라고 했다. 달을 꽉 채워 출산을 했는데도 아기는 2.5㎏이었다. 엄마 뱃속에서 태변을 먹었다. 황달까지 심했다. 할 수 없이 아기를 남겨둔 채 퇴원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희귀병

경찬이는 자라면서 배가 유별나게 컸다.

“시어머님은 아기가 많이 먹으려고 뱃고래가 큰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아이가 큰다고 하셔서 진짜 그런 줄 알았어요.”

생후 6개월이 되자 누워서 우유를 뿜어댔다. 소아과에 데려가니 간이 잡힌다며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도 간이 큰 건 잡혔는데 병명은 알 수 없었다.

경찬이는 또래 아이만큼 자라지 않았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토하고 아이가 심각하다고. 간성혼수가 온 것이다. 서울대병원에 데려갔다. 당원병 같다고 했다. 간에서 당을 분해하는 효소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간에 계속 저장은 하는데 꺼내서 쓰지 못하는 병이다. 그러니 애가 자라지 못한 것이다. 희귀병이라 약이 없었다. 옥수수전분을 수시로 먹이는 것밖에 해줄 게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빼빼 마르고 작은 경찬이는 아이들에게 맞고 다녔다. 결국 2학년 때 처음 수술대에 올랐다.

“영양분이 자꾸 간에만 저장되니 단락수술을 해보자고 했어요. 간으로 가는 핏줄을 다른 데로 가게 큰 거만 놔두고 막자는 거지요.”

수술 후 3㎝나 컸다. 그래도 배가 들어가진 않았다. 꼭 복수 찬 애 같았다. 볼에 지방이 축적돼 인형처럼 볼이 빨갛게 되는 당원병의 특징 때문에 애들의 놀림도 받았다. 집에 오면 지쳐 쓰러졌다. 13세까지 그렇게 살았다.

격투기 챔피언

“아이들에게 자꾸 맞으니까 경찬이 스스로 검도, 태권도를 배우려고 했어요. 근데 거기서도 애들이 왕따를 시키는 거예요.”

중학교 1학년 때 드디어 격투기 체육관을 찾아갔다. 집에 들어온 전단지를 보고 어머니더러 같이 가자고 했다. 며칠이나 할까 반신반의하며 보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다. 경찬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쩍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운동을 하는 중에 간부전 및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간이식을 해야 하는데 가족은 경찬이와 조직이 맞지 않았다. 기증받아야 했다. 명단에 올렸다. 8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인 10세 아이의 간을 받았다. 길게는 10년을 기다리는 환자도 있는데 경찬이는 자라지 않은 덕에 맞는 크기의 간을 빨리 받을 수 있었다.

2006년 5월 두 번째 수술대에 올랐다. 간을 잘라내 보니 500원짜리 크기의 종양이 발견됐다. 암이었다. 일주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내려왔다. 이식한 간은 몸속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부작용이었다. 한 달이 지났다. 퇴원 후에도 10월까지 집에서 있었다. 운동을 시작한 후 처음 5개월을 쉬었다. 수술 후에는 골고루 다 먹었다. 1년 새 12㎝나 자랐다.

운동을 시작한 후 1년 6개월이 되면서 대회에 출전했다. 2006년 격투기 대회에서 최우수상, 각종 주니어대회 우승, 2010 충주국제무술대회 충북도지사상(최우수상), 전국격투기대회 은메달 등 전적이 화려했다.

“간이 나빠 운동은커녕 앞으로 제대로 살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던 아이가 챔피언이 됐어요.”

1년에 시합이 4∼5번 있다. 대회라면 전국 어디도 마다않고 달려갔다.

주위 사람들은 “부모들이 생각이 있는 거냐”고 나무랐고, 담당 의사도 “살살 시켜라. 임상환자 중 격한 운동을 하는 사람은 경찬이밖에 없다. 신문에 날 일이다”며 우려했다.

경찬이는 격투기 3단, 합기도 3단, 태권도 2단, 특공무술 2단 합이 10단의 무술인이 됐다.

새로운 도전

경찬이는 경호원이 되고 싶었다. 그동안 쌓아온 무술 실력으로 누군가를 지키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는 그것만은 말렸다. 이제 이식받은 지 5년이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었는데 궂은일을 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하나님 앞에 드린 서원기도가 있었다. 늘 그것이 마음의 짐이었다.

“아들 하나 주시면 주의 종으로 키우겠습니다.”

목회자로 키우겠다고 기도했었다. 그런데 경찬이는 생각이 달랐다. 올해 모대학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이날도 기말고사 기간이라 경찬이는 만날 수 없었다.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여름방학에는 새로운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강원도 동강에서 래프팅 강사를 해보겠대요. 등록금이라도 벌어보겠다고.”

그동안 자신을 뒷바라지하느라 애쓴 부모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나보다. 사실 경찬이뿐 아니라 아버지도 지병이 있었다. 재생불량성 빈혈. 몸에서 비타민 B12를 만들어내지 못해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자신의 몸도 성치 않은데 인천시민자원봉사회, 장애인돕기 산악회 등을 설립, 이웃을 돌보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경찬이는 신장 기증자에 대한 고마움을 아버지와 함께하는 봉사로 대신하고 있다.

김씨는 같은 처지에 있는 부모들에게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아픈 데 무조건 참고 기다리라는 말만큼 기운 빠지는 말이 없어요. 그러나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면 하루가 모여 1년이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해요.”

아들을 보면서 항상 용기를 배운다는 부모. 불완전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는데도 밝고 따뜻한 웃음을 짓는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우리는 대부분 하나둘 이상의 불완전한 조건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는 이미 챔피언이다.

글 최영경 기자·사진 윤여홍 선임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