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나는 ‘사람’이다
입력 2011-06-15 17:29
요즘 ‘나는 **이다’라는 카피가 유행이다. ‘나는 가수다’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후 거기 출현하는 가수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나는 팬이다’라는 사이트를 만들더니만, 먹거리를 챙기는 엄마들은 ‘나는 엄마다’란 모임을 만들었다. 유행을 따라 이번 기회에 외쳐보고 싶은 하나가 ‘나는 사람이다’이다. 이런 절규를 하게 된 까닭은 다소 어이없지만 ‘개’와 비교해서이다.
지금은 마당 넓은 이웃에게 주었지만 3년 전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다. ‘동생이 없으니 대신 강아지라도 있어야 한다’는 아들 아이의 항변에 꼼짝 못하고 강아지를 샀다. 동물병원에서 이런 저런 주의사항을 주더니 진료카드를 하나 써 준다. 읽어보고는 순간 착각이 들었다. 아이 신생아 때 진료표랑 똑같은 거다. 아가 이름, 보호자(엄마) 이름. 종을 초월하여 내가 졸지에 개의 ‘엄마’가 되었다. 동물사랑이라면야 어려서부터 뒤지지 않지만 이후 동물병원에서 의사나 보호자들이 ‘개’를 다루는 모양새를 보니 거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웬만한 개들 팔자가 ‘사람’보다 나았다.
이러다보니 드라마에서조차 ‘개’를 질투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마당이다. ‘신기생뎐’을 보면, 멀쩡히 잘 사는 집에 다 큰 아들인 ‘다모’는 결혼문제로 아버지와 언쟁을 하다 그간 섭섭했던 이야기를 쏟아놓던 중 급기에 그 집 상전인 개 ‘안드레’를 이야기한다.
“제 생일 몇 번이나 챙겨 주셨어요? 사진 보니 돌 때랑, 그리고 내가 기억나는 건 여덟 살 때 한 번. 내가 치사해서 이런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안드레’ 생일에는 고깔모자까지 쓰시고 매번 챙겨주시면서….” 천둥이 무서워 잠 못 잘까봐 안드레를 침대로 데리고 온 모습에 질려 밖으로 나가면서 다모 엄마도 속으로 한소리를 했다. ‘나는 첫날밤에 딱 한 번 팔베개 해주더니….’ 이것 참, 웃기가 민망한 상황이다.
개 대접이 이러하다보니 애견 카페, 호화로운 애견 주택, 수제 애견 간식까지 등장하고 있다. 어느 날 뉴스 화면에서는 대학졸업 후에도 시간제 노동밖에 기회가 없는 어느 젊은이가 한 봉지에 자신의 시간수당 배가 넘는 강아지용 훈제연어 간식을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들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 스타는 동물보호소에서 고생하는 개들을 돌보며 ‘사지 말고 입양합시다!’란 개념 찬 홍보를 하고 있었지만, 부자 ‘엄마’에게 입양되어 ‘럭셔리한 삶’을 사는 개들의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나오는 동안 내 마음 한 구석은 불편하였다.
놀부 심보도 아니요, 개가 싫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에 차등이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요, 개와 고양이는 아무렇게나 다루어져도 된다는 주장은 더욱 아니다. 애완용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개별적 기호를 나무람도 아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한 봉지에 1만원이 훌쩍 넘는 애견 간식이 슈퍼마켓마다 즐비하고, 미용에 치장에 10만원이 넘게 장식하고 뿌듯해하는 우리의 ‘애견문화’ 말이다. 그 모든 피조물의 탄식에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잠깐 돌아보면 한 끼 밥값이 없어 배를 곯는 어린이, 노인, 노숙자들이 곁에 있는데 그 ‘사람’들을 외면한 채, ‘개 엄마’ 노릇에만 정성인 우리 모습을 보시면 이는 더 가슴 아파하실 일이 아닐지….
백소영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