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운명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의 운명’ 출간
입력 2011-06-14 21:24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은 부산 부민동에 있었다. 수수하다 못해 조금 허름한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그분을 처음 만났다. 차 한잔을 앞에 놓고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날 바로 같이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만남이 내 평생의 운명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마지막 비서실장’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그렇게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1982년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업한 이래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친구이자 동지로서 한 시대를 동행했다.
문 이사장이 14일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증언록이자 자서전인 ‘문재인의 운명’(가교출판·사진)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노 전 대통령과 인권변호사 일을 함께하던 시절을 시작으로 여러 일화들이 담겨 있다. 대북송금 특검, 이라크 파병, 대연정 제안을 비롯해 안희정 충남지사와 영화배우 문성근씨의 대북 접촉 사실 등 역사적 사건들에 얽힌 비사(秘史)와 소회가 충실하게 소개돼 있다.
문 이사장의 남다른 개인사도 흥미롭다. 경희대 법대 재학 중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해 구속된 일, 강제징집돼 특전사 공수부대에서 31개월간 군 복무를 했던 과정, 복학 후 다시 학생운동을 하다 현재의 부인과 장인 등 처가 식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수갑에 채워져 연행됐던 일화,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하면서 법무부장관상까지 받았는데도 판사 임용에서 탈락했던 사정 등이 담겨 있다.
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 연루 혐의로 검찰에 출두했을 때의 분노도 솔직하게 토로했다.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검찰은 박연차 회장의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할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문 이사장은 현재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책 끝 부분에는 그의 향후 행보를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