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고속도로 1000억 들여 옮긴 ‘판교 주민의 힘’
입력 2011-06-14 21:43
경기도 성남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무분별한 도시 개발과 주민들의 집단 이기주의로 막대한 혈세가 낭비될 처지에 놓였다.
성남시와 LH는 더 많은 개발 이익을 챙기기 위해 고속도로 바로 옆에 아파트를 지었고, 아파트를 분양받은 주민들은 소음으로 집값이 오르지 않자 집단으로 압력을 행사해 끝내 관철시켰다.
14일 성남시와 LH 등에 따르면 한국도로공사는 1000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경기도 성남시 운중동 판교신도시 북단을 지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1.84㎞ 왕복 8차선 구간을 2015년까지 110m 북쪽으로 이설하기로 했다. LH와 성남시는 사업비 1063억원을 판교 사업비로 충당할 방침이다.
문제의 발단은 판교지구 택지개발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운중교 바로 옆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LH공사는 보다 많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운중교에서 불과 33m 떨어진 곳까지 아파트를 지었다. 2006년 당초 15층 높이로 계획된 이 아파트는 8·31부동산 대책 직후 최고 18층으로 변경돼 고속도로 높이를 넘었고 소음 문제가 야기됐다.
당시 부동산 버블을 틈타 시세차익을 노렸던 청약신청자들은 아파트 골조가 완성된 2008년 뒤늦게 소음 피해를 제기했다. 이들은 아파트 바로 옆에 고속도로가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분양받았다고 주장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판교∼학의 구간 8.8㎞는 1991년 12월 착공해 1995년 7월 준공됐다. 고속도로로 인한 소음피해 가능성을 모른 채 청약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주민들은 2009년 입주한 뒤부터 줄곧 소음 대책을 요구했고, 결국 관철시켰다.
이 같은 교통소음은 아파트를 분양하기 전인 2004년 4월 ‘성남 판교지구 택지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당시에 이미 예견됐었다.
도로변 6개 지점에서 측정한 소음이 소음진동규제법상 교통소음 규제치(주간 68㏈, 야간 58㏈)와 환경정책기본법상 도로변 소음 기준치(주간 65㏈, 야간 55㏈)를 넘었다.
판교지구 개발을 총괄한 국토해양부(옛 건설교통부)와 판교지구 사업시행자인 LH 및 성남시는 높이 3m의 방음벽을 설치하면 소음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막대한 세금을 낭비하게 된 성남시와 LH는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성남시는 “성남시 사업구역이긴 해도 판교 개발 전체를 국토해양부와 LH가 총괄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LH는 “판교 택지개발은 설계단계부터 각 구역 사업시행자가 담당했기에 해당 구역 세부 계획 수립 결정권은 성남시에 있다”고 맞받아쳤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