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다육이가 던지는 물음표

입력 2011-06-14 17:55


아침에 눈 비비면 달려가는 곳이 있다. 물 빠질 구멍만 있으면 사기그릇이고 간장종지고 죄다 ‘다육이’를 심어놓은 베란다이다. 사막과 같이 물이 부족한 곳에서 자라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 식물이다. 도톰하고 통통한 잎사귀들이 겹겹이 모여 꽃 모양을 하고 있어 굳이 꽃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앙다문 모습을 하고 겹장미처럼 잎을 펼치는 ‘라울’, 마치 하늘색 포도송이를 달고 있는 듯한 ‘양로’, 하나로는 빈약해보여 네 개를 심었더니 꽃대를 키우는 ‘레지티아’. 여기에다 ‘파리다’는 안쪽 잎사귀가 연두색인데 겉으로 나올수록 초록, 가장자리는 붉은 색으로 번져 양귀비 같은 잎을 고아하게 펼치고 있다. 탱글탱글한 잎사귀들을 달고 앙증맞은 생김새로 햇빛을 받으면 주황 빨강 노랑 등 몽환적인 색깔을 띤다. 귀여운 아기를 보면 깨물고 싶듯 다육이도 보고 있으면 손으로 눌러 터뜨리고 싶다.

친구가 오랜만에 왔길래 다육이 가게로 갔다. 그곳에 갈 때는 시간을 여유 있게 잡아야 한다. ‘다육이를 산 다음에 일을 봐야지’ 하다가는 다음 일이 무산되기 십상이다. “이러다 다육이한테 중독될 것 같아.” 친구에게 소곤거렸다. 그러자 다육이를 사러 온 여자가 “중독이 뭐예요. 저는 일요일마다 여기 와서 살아요. 중독이 아니라 쓰러질 정도예요”라고 한다.

다육이를 고르려고 매장을 몇 바퀴고 돌았다. ‘버날렌스’라고 꼭 세공예 장미처럼 핀 게 맘에 들었다. 배가 볼록한 화분의 버날렌스는 인디언 핑크빛을 하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어떤 꽃에도 비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얼마냐고 물었다. 꽤 비쌌다. 주인은 “다육이는 나이 들수록, 다리가 통통하고 짧을수록 비싸요” 하며 웃는다. 사람도 나이 들수록 뚱뚱할수록 가치가 올라가면 얼마나 좋을까.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디 자라니까 세월 값과 한 잎 한 잎 새순을 돋우고 헌 잎이 떨어져 나간 만큼으로 키를 키우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맘에 드는 다육이를 발견했다. ‘홍일산’이라고 했다. 가느다란 줄기에서 뻗은 세 가지에 장미꽃 모양을 하고 있다. 여리고 긴 모양이 청초하고 가련해 보였다. 모딜리아니의 슬픈 여인이 화분으로 옮겨 앉은 듯했다. 친구는 꼭 자기 같은 걸 고른다며 좀 풍성한 걸 골라보자고 했다. 가지가 많이 뻗은 데 잎들이 초롱불을 매단 것 같은 다육이를 골랐다. ‘숲 속의 요정’이라고 했다. 몇 년 되었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몇 년 된 건 상관없어요. 현재 모습이 중요하지요.”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이와 상관없는 현재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세월을 견뎌온 다육이. 친구는 주인에게 다육이를 어떻게 키우느냐고 물었다. 모래와 마사의 비율을 7대 3으로, 화분은 작게, 물도 거름도 적게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들은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부족함을, 결핍을 일상처럼 견뎌왔다. 나는 숲 속의 요정을 내려놓고, 나의 숲 속에서 수많은 물음표를 던져본다. 나는 어떤 절제와 인내로 지금의 모습을 빚어왔는가? 멀지 않은 날, 주름을 매력으로 만들기 위해, 나이를 미쁘게 맞기 위해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하는가?

조미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