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등록금 대책은 대학 구조조정부터

입력 2011-06-14 17:56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어제 “한나라당은 차분한 자세로 국가의 교육 백년대계의 기초를 닦는 합리적 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원 대책도 없이 반값 등록금을 불쑥 들고 나온 장본인이 뒤늦게 속도 조절을 외친 셈이다. 황 원내대표의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이 “반값 등록금 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진지하게 대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다음날 나왔다.

이 대통령 발언을 고비로 정부와 여당의 반값 등록금 대응은 서두르지 않는 쪽으로 방향이 잡힌 듯하다. 그러나 이미 실기(失機)하지 않았나 싶다. “반값이 아니라 부담 완화·인하”라고 말을 바꿔봐야 엎질러진 물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뒤질세라 당장 내년부터 반값 등록금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동영 의원은 무상등록금까지 들고 나왔다. 이런 마당에 한나라당의 뒷걸음질은 시위만 자극할 수 있다.

어제는 전교조까지 나서서 ‘반값 등록금 실현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미래의 대학생인 중·고등학생들에게도 비싼 대학 등록금은 절실한 문제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처럼 중·고등학생까지 거리로 몰려나온다면 어쩔 것인가. 자식의 등록금을 대야 하는 부모들까지도 가세할 수 있다.

반값 등록금은 다른 무상복지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내년 총선과 대선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에서 나왔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정부가 등록금 고지서에 나오는 명목등록금의 절반을 다 지원할 경우 7조원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가시화된 다른 무상복지 시리즈보다도 훨씬 많은 예산이다. 이 대통령은 13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부가 정책을 한번 잘못 세우면 국가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황 원내대표가 말을 한번 잘못해서 국가가 흔들릴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유념할 게 있다. 국공립과 사립대를 차별 지원하고 일정 성적 이상을 얻은 학생에게만 등록금을 완화하는 방식은 반값 등록금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 부실하게 운영되는 대학에 대해서는 퇴출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우선해야 한다. 재단 출연 없이 등록금으로 적립금이나 쌓아 놓는 대학에까지 세금을 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