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반값 공화국
입력 2011-06-14 17:39
우리 현대사에서 ‘반값’ 슬로건의 효시는 아마 1992년 14대 대선 후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지 싶다. 당시 통일국민당 정 후보는 3김 정치 청산과 아파트 반값 공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388만여표(16.3%)로 김영삼, 김대중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치고 말았다.
득표율로는 정 후보가 급조한 통일국민당이 그해 3월 치른 14대 총선에서 얻은 10.3%보다 6% 포인트나 높았다. 반값 공약이 적잖이 작용한 듯도 하다. 일부 유권자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아파트를 반값에 살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나름 솔깃했을 터다.
실패한 반값 아파트 공약은 15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2007년 17대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이번엔 성공이었다. 이 후보는 2위 득표자인 정동영 후보를 무려 500만여표나 제쳤다. 다만 이 후보가 내세운 서민용 반값 아파트는 엄밀히 말하자면 저가격의 아파트, 즉 보금자리주택이었다.
그런데 보금자리주택은 무늬만 서민용, 말로만 반값이다. 모든 서민에게 다 공급되는 것도 아니고 가격도 주변 시세보다 20∼30% 싼 정도다. 더구나 수도권 보금자리주택 가격은 3억원도 넘는다. 지방의 대형 아파트 가격을 웃도는 보금자리주택을 과연 서민용 저가 아파트라고 말할 수 있겠나.
‘반값’은 사실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좀 더 싸게, 누구든지 쉽게 살 수 있는 가격으로 공급하겠다는 일종의 호소다. 그러다보니 공약으로 앞세우기엔 딱 그만이다. 아니 제값보다 싸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데 마다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작금의 반값 등록금이 바로 그 격이다.
원래 가격은 원가에 따라 결정되고 수요의 과다에 따라 달라진다. 원가를 낮추거나 수요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동반되지 않으면 반값 등록금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더구나 반값 등록금의 경우 국민의 관심사는 반값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재의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는 데 있다.
대학진학률을 낮추는 문제(수요 줄이기)는 장기과제가 될 것이고 당장의 해법은 원가를 줄이는 일이다. 대학의 경영방식, 등록금 산정체계 등에 대한 치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밑도 끝도 없이 ‘반값’이란 달콤한 제안을 내놓을 뿐, 대안 마련에는 소극적이다.
반값 좋아하는 정치인들을 위해서는 정당 국고지원금과 국회의원 세비를 차제에 반값으로 후려치는 게 옳지 않겠는지…. 반값 공화국의 반값 정치인들, 그래도 요즘 대학 등록금은 너무 비싸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