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기 빠진 그린엔 스폰서 향기만… LPGA 태극자매 이유있는 무승

입력 2011-06-13 18:24


‘벌써 더위를 먹었나.’

지난해까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호령하던 한국여자 선수들이 올해는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승전보를 잇따라 알려왔던 한국 군단은 올해는 이미 10개 대회를 마쳤지만 아직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대신 ‘안타까운 준우승’ ‘통한의 역전패’라는 말만 들려오고 있을 뿐이다.

13일(한국)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팬더 크릭골프장(파72)에서 열린 LPGA 투어 시즌 10번째 대회인 스테이트 팜 클래식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세계랭킹 1위 청야니(대만·합계 21언더파 267타)의 우승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지난 1988년 구옥희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LPGA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지난해까지 통산 98승을 만들어냈지만 대망의 통산 100승을 눈앞에 두고 한국 선수들이 주춤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및 한국계 선수들은 올해 준우승 만 네 차례 차지하는 등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재미동포 미셸 위(22)가 시즌 개막전에서 단독 2위에 머물렀고, 믿었던 신지애(22·미래에셋)도 준우승 만 두 차례에 그쳤다.

박세리(34)가 1998년 본격적으로 LPGA 투어의 문을 두드린 뒤 한국 선수들은 매년 6월 둘째 주까지 어김없이 승리를 챙겼다. 2006년 이 시기에는 역대 최다인 7승까지 합작했고, 박세리와 김미현(34·KT) 만이 활약했던 초창기도 매년 1승씩을 수확했다. 6월 둘째 주까지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그럼 한국여자골프의 부진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독기 부족’이다. 박세리, 김미현 등 LPGA 투어 1세대 멤버들은 자동차로 대륙을 횡단하고 햄버거로 배를 채우며 강인한 정신력을 길렀다. 이런 ‘헝그리 정신’은 한국 선수들을 강하게 만들었고, 이는 곧 성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에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은 든든한 후원을 받는 등 예전보다는 풍족한 투어생활을 하고 있다. ‘우승=생존’이라는 절박함을 더 이상 한국 선수들에게 찾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한·미·일 투어를 병행해야하는 것도 한국 선수들의 부진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 군단은 LPGA 투어 대회가 없는 주에는 일본 투어나 한국 투어를 오가며 경기를 치른다. 각국 시드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대회 숫자가 있고 한국은 스폰서, 일본은 큰 상금 등을 이유로 대회를 포기할 수 없다. 체력과 컨디션 조절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외국 선수들이 예전과 달리 ‘연습 벌레’가 된 것도 한국 선수들이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김준동 기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