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깃발 든 기마병 암각화 고구려·북방 유목문화 연관성 입증”
입력 2011-06-13 17:50
카자흐스탄 남부 쿨자바스이의 바위그림(사진) 속에서 깃발 든 기마병은 한창 달리고 있다. 말의 좌우 다리는 살짝 엇갈렸고, 바람을 맞은 깃발은 뒤편으로 시원스레 흩날린다. 기원 전후부터 3∼4세기까지 중앙아시아와 몽골을 중심으로 퍼진 ‘달리는 기마병’ 도상은 비슷한 시기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등장한다. 안악3호분과 덕흥리고분 벽화는 창을 든 기마병이 말을 타고 달리는 순간을 포착했다.
5∼6세기 이후로 추정되는 인근 탐갈르이 지역의 말 탄 기마병 암각화. 이번에는 말의 속력이 더욱 빨라졌다. 말의 앞뒤 다리가 사냥하는 치타마냥 좌우로 쫙 뻗었다. 같은 시기, 고구려 고분 무용총의 수렵도에도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말이 등장한다.
그동안 국내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는 중국 화상석(畵像石)과 문헌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고구려 벽화가 중원의 압도적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 왔다는 해석은 중국 학계에 의해 ‘고구려=중국 지방정권’설로 왜곡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이 2005년부터 몽골, 남부시베리아, 중앙아시아, 고비사막 등에서 벌이고 있는 현장조사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왔던 북방 유목민족의 문화, 그 중 바위그림(암각화)에 주목했다. 한반도 초기 문화가 중원이 아니라 북방 유목문화와 더 깊이 연관돼 있음을 바위에 새겨진 그림은 명쾌하게 보여준다.
이미 선사시대부터 ㄱ자로 꺾인 말의 앞다리, 사슴뿔 산양뿔이 달린 말 등 유사한 양식의 그림은 흑해 연안에서 시베리아, 몽골, 한반도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바위그림 현장조사 결과를 묶은 4번째 보고서 ‘카자흐스탄의 바위그림’이 최근 출간됐다. 몽골 서북부, 투바 등에 이어 이번에는 카자흐스탄 교육과학부 고고학연구소와 함께 2009년 한 달간 카자흐스탄 동남부 13곳을 4000∼5000㎞ 이동해가며 답사했다.
장석호 연구위원은 “문헌이 없는 아시아 선사시대를 밝혀줄 메모리칩이자 고구려 고분벽화를 북방문화와의 연관 속에서 폭넓게 해설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수집했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