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건용] 엄격한 나라
입력 2011-06-13 18:02
“이미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면 눈총을 받거나 제재를 받는 사회는 곤란하다”
지금은 아기 낳는 것을 적극 권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둘 이상 낳으면 애국도 모르고 지구의 미래도 안중에 없는 사람처럼 취급되었다.
우리 부부는 사내만 둘 낳았는데 나는 딸 있는 집이 몹시 부러웠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했다. 나의 형제, 나의 친구, 나의 형제들의 친구, 나의 친구들의 형제 등 내가 아는 한 우리 또래들은 전부 자녀가 둘씩이다. 돌이켜보면 소름끼칠 정도의 획일화였다.
‘세시봉’ 시절의 이야기다. 장발 단속이라는 것이 있었다. 남자들의 머리가 길면 안 된다고 해서 경찰이 단속을 했다. 지나치게 길면 강제로 머리를 깎았다. 기준이 다소 모호해서 ‘귀를 덮으면 안 된다’던가 했다.
미니스커트에 대한 단속도 있었다. 이 기준은 좀 더 분명했다. 치맛단이 무릎 위 20㎝ 이상 올라가면 안 되었다. 역시 경찰의 단속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를 들고 다니며 수상한 무릎의 길이를 쟀다.
우스운 옛날 얘기이다. 그러나 정말 ‘옛날’ 얘기인가. 예컨대 오늘의 회식문화는 어떤가. 팀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하는 일이니 빠지기 어렵다. 정해진 메뉴가 있으니 거기서 “나는 채식주의자”라고 해 보아야 소용없다. 건배를 한다. “위하여” 소리가 우렁차다. 좀 더 ‘센’ 데는 폭탄주를 돌린다. 역시 “술 못합니다”라는 말은 화합을 깨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식사가 끝나면 노래방에 간다. 이런 경우를 위해서 부를 노래 한 곡은 준비해 두어야지 적당히 피하려다가는 곤욕을 치른다. 잘못했다가는 조직의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앞날이 어두워진다. 이것은 분명 옛날 독재시대의 얘기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가 확보되었다는 오늘의 얘기이다.
마음먹은 대로 살기에 쉬운 사회가 아니다. 머리를 기르는 것이 재채기를 하는 것보다 남에게 더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데 그렇게 못한다. 결혼해서 아이 낳는 일은 천륜에 속한다고 말은 하면서 그 천륜을 어기면서까지 대세에 복종한다. 자유천지라고 하지만 이미 길은 정해져 있다. 그것을 벗어나면 눈총을 받든가 심지어 제재를 받는다.
그런데 그 길을 누가 정했는지 알 수 없다. 전통문화? 반도에 갇혀 살며 형성된 민족의 동질성?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느꼈던 현대사? 군사독재 시절의 유산?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 33개국 조사대상 중에서 다섯 번째로 엄격(tight)한 사회라고 한다.
사회 구성원이 일상에서 사회규범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은 용납하지 않는 경향이 그만큼 강한 사회란 말이다. 연구진은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예를 들면 “식당에서 키스할 수 있느냐” “거리에서 노래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못한다는 대답이 많으면 엄격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설문에 이런 질문을 넣으면 어떨까. “윗사람보다 비싼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가.” “야간 자율학습을 안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름을 네 글자 이상으로 지을 수 있는가.” “정해진 휴가 날짜를 다 쓸 수 있는가.” “아들보다 학력이나 수입이 월등한 며느리를 맞을 수 있는가.” “‘우리가 남이가’라고 할 때 ‘남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설문의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할 수 있다’는 답이 더 많을까. 나의 예상은 ‘아니다’이다. 물론 하나도 금지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우리나라는 위의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엄격한 사회가 맞다. 영어의 뜻을 좀 더 풀어서 말하면 꽉 짜여서 숨이 막히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가 좋은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굳이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오늘의 현상은 그 결과이다. 장발 단속의 시대부터 오늘까지 세월도 많이 흘렀고,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는지도 모르겠다.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