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정태] 의약품 재분류

입력 2011-06-13 18:02

현행 약사법은 의약품을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안전성·유효성이 검증돼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이다. 의약외품도 있다. 인체에 대한 작용이 약해 의약품에 속하지 않는 물품으로 어디에서나 판매할 수 있다. 품목 수는 전문의약품이 항암제 등 2만1000개, 일반의약품이 감기약 등 1만7000개, 의약외품이 붕대·소독약 등 1만7000개다. 시장(생산) 규모는 전문약 11조원, 일반약 2조5000억원, 의약외품 1조원.

선진국은 의약품이 2분류 체계인 곳도 있고 3분류 체계로 돼 있는 곳도 있다. 일반적으로 3분류 체계는 처방약, 약국약 그리고 자유판매약으로 나뉜다. 자유판매약은 약국 외 판매가 가능하다. 프랑스 등이 우리처럼 의약품을 약국에서만 판매하지만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캐나다 스위스 등은 일반약 전체나 일부를 슈퍼마켓 등에서 팔고 있다.

국민 여망이었던 ‘약국 외 판매’를 사실상 보류했다가 여론의 뭇매와 대통령의 질타를 받은 뒤에야 보건복지부가 정신을 차렸나 보다. 국민 편익을 위해 가정상비약의 슈퍼 판매를 허용하는 쪽으로 재추진하겠다고 했으니 다행이다. 진수희 장관은 어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까스활명수 같은 액상소화제 등을 의약외품으로 정해 장관 고시로 슈퍼 판매를 실시하는 안, 약사법을 개정해 해열진통제·감기약 등을 자유판매약으로 새로 분류하는 안을 들었다.

그렇지만 갈 길이 멀다. 의약품을 재분류하려면 중앙약사심의위원회(약심)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약심은 복지부 장관 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자문에 응하는 기구다. 5개 분과위가 의약품의 법전인 ‘대한약전’ 제·개정, 의약품·의약외품 기준 등 약사(藥事)에 관한 자문을 한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11년 만에 처음 실시되는 의약품 재분류는 약사제도분과위 산하 의약품분류 소위원회가 맡는다. 의료계 4명, 약계 4명, 공익대표 4명 등 모두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내일(15일)이 첫 회의인데 의사협회와 약사회의 밥그릇 싸움으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일반약이 약국 외 판매용으로 결정되느냐다. 국민 기대에 부응하려면 진 장관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약사들에 휘둘려 왔다는 비판과 오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항간에 떠돈 ‘5급(사무관) 장관’이라는 불명예도 떨쳐낼 수 있을 테고.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