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전통문화학교에 무슨 일이
입력 2011-06-13 18:03
충남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 김봉건)는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계승·발전시킬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2000년 설립한 4년제 대학(학력인정 각종학교)이다. 현재 6개 학과에 500여명이 재학 중이다. 문화재 분야의 인력을 숱하게 배출해 전통문화 교육의 전당으로 자리잡은 이 학교가 요즘 때아닌 성희롱 사건으로 시끄럽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해 2월, 이 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를 졸업한 2006학번의 이모씨가 졸업한 지 10개월이 지난 12월 13일 ‘김호석 회화전공 교수가 2008년 2학기부터 2010년까지 수업시간에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성희롱 발언을 수차례 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기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3개월 동안 감사에 들어갔다.
감사 결과, 이씨가 탄원서에서 주장한 142가지 성희롱 내용 가운데 13가지가 징계 사유로 채택돼 지난 2월 22일 학교에 통보했다. 그러자 학교는 여성의 신체 부위를 거론했다는 발언 등 다섯 가지를 추가한 다음 징계위원회를 열어 1학기 종강 3주를 앞둔 지난 5월 17일 김 교수를 해임했다. 김 교수 해임 이후 회화전공 수업은 공백 상태다.
논란은 세 가지다. 이씨의 주장대로 김 교수가 수업시간에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성희롱 발언을 했느냐가 첫째이고, 졸업한 지 10개월이 지난 사람이 김 교수의 성희롱을 뒤늦게 문제 삼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 배경에 대한 것이 둘째다. 마지막 세 번째는 문화재청과 학교 측은 엄정한 감사와 정당한 징계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다.
사실 성희롱 발언은 듣는 학생이나 강의하는 교수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김 교수는 “누드 그림 수업에서 가슴, 허리, 체모 등에 대한 언급은 불가피한데 비유적으로 설명한 신체 부분의 특정 단어만을 왜곡·과장해서 성희롱이라고 한다면 미술대학 웬만한 교수들은 성희롱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이씨와 학교 측은 “김 교수가 수업 중 한 학생에게 ‘너는 눈썹이 까만데 겨털도 그러냐’며 은밀한 부위를 쳐다봤다”고 한다. 이에 김 교수는 “눈썹은 인물의 성향을 나타내는데 중요하다. 대부분은 체모가 있으며 색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며 “수업 중 특정 학생의 은밀한 부위를 쳐다봤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한다.
여성의 누드 내지 야한 그림을 놓고 예술이냐 에로냐 하는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돼 온 사회적 논란거리이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라면 단어 선택은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김 교수의 언행은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을 법하다. 그렇다고 졸업한 지 10개월이 지난 학생이 탄원서를 통해 스승을 고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복 초상화를 그린 화가이자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운동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문화재청 산하 학교의 녹을 받아먹으면서 어떻게 문화재청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느냐”는 괘씸죄에 걸렸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미운털’이 박힌 교수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학교 측이 김 교수를 해임하면서 이씨를 비롯한 피해자의 증언은 받아들이면서도 이씨와 함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증언은 도외시했다면 공정성에 의문이 간다. 이 학교 일부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이씨가 정확한 근거없이 일방적으로 김 교수를 음해했는데 학교측에서는 우리 의견은 귀담아 듣지 않고 김 교수를 해임했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현재 이씨에 대해 명예훼손, 학교에 대해 해임무효 등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진위는 법원 판결에서 밝혀지겠지만 이번 사건은 한국전통문화학교의 폐쇄적인 행정과 비민주적인 교육 과정에 대한 문제점을 한꺼번에 노출시킨 사례다. 김 교수 직전의 한 교수도 학생들에 대한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했다니 우리 전통을 가르치는 학교의 정체성이 의심스럽다.
이광형 문화과학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