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수 남몰래 방랑기(2~4)
입력 2011-06-13 17:40
청년예수 남몰래 방랑기 (2)- “저를 아들로 삼으십시오”
나 예수는 그 날 베들레헴으로 내려갔습니다. 마침 예루살렘에 왔던 터라 그리 먼 곳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라헬 할머니가 묻혀 있습니다. 야곱 할아버지의 아내인데 우리 조상들이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 갈 때 구슬프게 울었던 할머니입니다. 그리고 특히 내가 속한 유다지파의 본향이기에 ‘다윗의 동네’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가진 마을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나 예수가 탄생된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비록 초라한 마구간이기는 했으나 자기의 탄생지는 설령 화장실이라 해도 한 번 가보고 싶은 것 아닙니까?
그래서 베들레헴을 조용하게 찾았습니다. 그 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꽤 벅적거렸습니다. 이집트와 다마스쿠스로 오고가는 사람들이 자주 쉬어가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라 베들레헴보다는 이방인들에게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말, 낙타, 당나귀가 집밖에 여기저기 매어 있어 거리는 무척 지저분했습니다.
“빈 방 있습니까?”
나 예수는 내가 태어나기 직전에 아버님 요셉이 여관마다 찾아 물으셨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볐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빈 방이 꼭 하나 있다는 여관이 있었습니다. 만약 빈 방을 구하지 못하면 마구간에서 잘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베들레헴을 방문하는 가장 큰 목적이 하나 있습니다. 여우같은 헤롯대왕이 나를 잡아 죽이려고 두 살배기 아래 아기들을 모조리 작살낸 사건 말입니다. 비록 악행은 헤롯이 했지만 아기들이 죽은 것은 결국 나 예수 때문이었기에 지금껏 마음에 큰 아픔이 되었습니다.
“얘 예수야, 여기 앉아라. 네게 꼭 알려 주어야 할 비밀 하나가 있느니라.”
나 예수가 열두 살 넘었을 때 어느 날 마리아 어머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라 헤롯왕도 그들 자신처럼 착할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왕궁으로 가서 유태인의 왕 곧 나 예수가 태어난 곳을 물었답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아기 50명가량이 우악스러운 군인들 손에 끽 소리도 못하고 죽었답니다. 시퍼렇게 날선 칼에 모가지가 뎅겅 날아가기도 했답니다.
나 예수는 수소문을 했습니다. 그 때 아기를 잃은 부모들이 누구이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 꼭 좀 만날 수는 없는지. 허지만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벌써 여러 해 지난 일이고 특히 지금도 헤롯왕의 손자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어 그것이 알려지면 온 가족이 박해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어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머리가 하얗고 주름살로 얼굴이 쪼글쪼글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겁먹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바로 예수라는 말을 듣고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이제 30년이나 지나고 보니 상처가 얼추 아물기는 했네. 그러나 그 아이 죽을 때 울던 그 울음소리가 지금도 가끔 들리지. 그러면 나도 그 때처럼 또 운다네.”
그러면서 때가 잔뜩 묻은 앞치마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어머님, 그 아드님이 저를 대신 해서 죽었네요. 그러니 저를 아들로 삼아 주세요.”
저도 어머님을 부여잡고 엉엉 목 놓아 울었습니다. 함께 우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이정근 목사, 원수사랑재단 대표)
청년예수 남몰래 방랑기(3)- “훈민정음은 영적 의미가 크지요”
한국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역사적 인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대표적이라면 바로 존 칼빈 혹은 요한 깔뱅이지요. 장로교회를 설립한 인물로 칭찬받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장로교회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 아닙니까. 그래서 스위스에 살고 있는 그는 두통거리가 있을 때마다 고개를 돌려 한국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답니다. 그럴 때마다 잔잔한 미소가 얼굴을 가득 덮곤 합니다.
허지만 나 예수는 한국을 바라볼 때마다 미소 정도가 아니라 함박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교회역사가 125년이라면 2000년과 비교할 때 아직 어린 교회라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해외선교사를 파송한 나라가 되었지요. 아니, 인구비례로 계산한다면 꼬레아가 바로 선교 1등 국가입니다.
드디어 어느 날 내 발걸음이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복음의 씨를 최초로 뿌린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처럼 인천에 내려 서울로 갔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 있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세종대왕입니다.
동북아시아에 오면 그 나라의 어른에게 가장 먼저 예의를 갖추는 것이 바로 유교문화라고 들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어른들을 존경하는 히브리문화와도 통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종로로 달려갔습니다.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는 세종로입니다.
“대왕님 강녕하셨습니까?”
“네 이름 먼저 아뢰렸다.”
“방랑객 청년 예수입니다.”
그 말을 듣고 세종대왕께서는 용상에서 내려오려 하기에 극구 말렸습니다. 견문이 넓은 그분은 예수라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환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하기야 나이로 따지면 내가 1천 4백 살은 더 먹었으니까요.
“대왕님께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경을 한글로 적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큰 은택이었습니다.”
“야소교 신자들로부터도 그런 말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한 것뿐인 걸요.”
“한 가지 더 감사드릴 것이 있습니다. 한글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이름 붙이셨더군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 들었습니다만 그건 동시에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복음’이라고도 풀 수 있습니다.”
“그건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신묘막측하십니다.”
그분을 만나니 세종대왕님은 하늘 아버지께서 한국 분들에게 내려주신 최고의 선물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 예수가 역사학자라면 세종대왕보다는 ‘세종황제’로 불러 드리고 싶기도 하구요.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네로에게도 황제칭호를 붙이는 걸 생각하면 그분에게는 더 좋은 칭호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분을 작별하고 종로 5가 연동교회로 갔습니다. <한국말 성경전서> 출간 100주년 기념예배와 학술대회가 그 곳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세종황제께서 만든 한글로 성경을 적었기에 수많은 백성의 영혼도 살아나게 되었고 또 천대받던 한글의 권위도 살렸답니다.
함생의 원리가 거기에도 있었습니다. (이정근 목사. 원수사랑재단 대표).
청년예수 남몰래 방랑기(4)- “만나 먹고 배탈 난 사람 보았소?”
그 날도 신문을 펼쳤는데 큰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느 시골 초등학교 학생들이 집단식중독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수십 명이 병원에 실려 가서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그 가운데 몇 아이는 고열이 나고 목숨을 잃을 위험도 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음식을 납품한 회사 이름이 ‘만나식품’이었습니다. 이 이름을 보는 순간 나 예수는 소름이 확 끼쳐 왔습니다.
‘만나’가 무엇인지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잘 알지 않습니까? 조상들이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먹었던 음식, 하도 신비하여 ‘이것이 무엇이냐’고 서로 물었던 것이 바로 만나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원인을 조사해 보니 음식에 독성 방부제를 넣은 것이 화근이었답니다. 그래서 저는 현장으로 뛰어갔습니다. 밖에서는 사진 찍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손가락질 하며 욕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안에서는 눈에 쌍심지를 켜들고 이것저것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관들로 복작거렸습니다. 주인부부는 겁에 질린 채 어쩔 줄 몰랐습니다.
나 예수는 구경꾼의 하나인 것처럼 팔짱 끼고 서성거리며 기다렸습니다. 얼마 뒤 모든 사람들이 떠나가고 그 부부만 남았습니다.
“걱정이 태산 같으시죠?”
“재수 없게 걸려들었네요.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닌데.”
“예수 믿으시나 봐요. 만나식품이라고 이름 지은 걸 보니까요.”
“아닙니다. 이웃집에 예수쟁이 한 가정이 있어 전도는 가끔 받지만 저는 교회당엔 안 갑니다. 그래도 만나식품이라고 지은 건 그 친구 덕택입죠. 개업할 때 선물로 지어준 거니까요.”
이 때 그 부인이 끼어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뭐랬어요. 식당 이름처럼 만(맛)나는 음식만 팔자고 했지요. 내 말 들었으면 이런 사고는 안 생겼잖아요.”
그러면서 부부는 한숨을 길게 내 쉬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누구시던가요?”
“제가 바로 만나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요 우유라고 할 수 있지요.”
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나 예수가 혹시 약간 머리 돈 놈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그 눈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조금 더 성경말씀을 풀어주었습니다.
“만나는 성경에 나오는 음식이름입니다. 창조주께서 주신 음식이었지요. 그런데 몇 백만 명이 40년 동안 먹었어도 한 사람도 배탈 나거나 설사 한 일이 없답니다. 건강식이었지요.”
“그런 음식을 우리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어요? 이런 꼴 또 안 당하게요?”
“아니오. 돈 주고 사지 않고 거저 받을 수 있습니다. 나 예수의 살과 피가 바로 만나인 걸요. 그래서 예수쟁이가 되면 무슨 식품을 팔든지 그것이 곧 내게서 받은 살과 피를 선물한다는 심정으로 사업을 하게 되지요.”
“좀 어려운 말씀이네요. 그러나 감사합니다. 우리 부부도 그 이름 지어준 친구와 함께 교회에 나가 더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는 심정으로 만나식품을 경영하겠습니다.”
나 예수는 그들 부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나만주의’라는 더러운 죄악을 말끔히 씻어내는 눈물이었습니다.
이정근 목사(원수사랑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