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부당 약제비 환수소송 악전고투 중인데… 국회·복지부는 수수방관
입력 2011-06-12 18:46
서울 성북구의 A의원은 지난 2월 남들보다 인지력이 떨어지는 경도인식장애를 앓고 있는 박모(34)씨에게 30일치 약을 처방했다. 약 종류는 중추신경용 1종, 동맥경화용제 6종, 혈압강하제 2종 등 16가지나 됐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중추신경용제 등 4종을 뺀 12가지는 과잉 처방됐다고 결정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A의원에 지급한 약제비 36만8000원의 81%인 29만8000원을 환수했다.
박씨 사례처럼 잘못된 외래 처방으로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당 지출된 약제비를 환수하는 작업이 병·의원을 상대로 매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환수 대상을 명확히 정한 법 규정이 없어 환수 작업을 맡은 건보공단과 병·의원 간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법 제정 책임이 있는 국회와 정부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12일 건보공단에 따르면 부당 외래처방 약제비 환수 규모는 2002∼2010년 2063억원에 이른다. 올해는 지난 4월까지 109억원이 환수됐다.
현재 부당 지출된 약제비를 병·의원으로부터 환수한다고 정한 법 규정은 없다. 건보공단은 불법행위 배상 책임을 정한 민법 750조에 근거해 “애초 건보료 지급 기준과 다르게 처방을 잘못한 병·의원이 책임져야 한다”며 환수를 강행하고 있다.
그러나 병·의원의 반발이 거세다. 현재까지 건보공단을 상대로 서울대병원 등 102개 병·의원이 73건의 약제비 환수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논란을 종식시키려면 부당 지출된 약제비 환수 대상을 명확히 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지만 입법권을 가진 국회는 뒷짐만 지고 있다. 환수 대상을 병·의원으로 규정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이 16·17대 국회 때마다 한 번씩 의원 입법됐지만 무산됐다. 18대 국회가 시작된 2008년 박기춘 민주당 의원이 같은 내용의 건보법 개정안을 재차 발의했다. 그러나 2009년 4월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까지는 통과됐지만 위원회 상임위에서의 의결은 현재까지 2년 이상 보류된 상태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법률이 이렇게 오랫동안 상임위에 묶여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손을 놓고 있긴 마찬가지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원 입법이 있을 때마다 성사될 수 있도록 의원들을 독려해 왔다”고 변명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태현 사회정책국장은 “국회와 복지부가 병·의원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면 법 개정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