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화재로 삶터 풍비박산… 노부부 ‘슬픈 동행’
입력 2011-06-12 18:46
서울 안암동에서 30년 동안 세탁소를 해온 김모(76)씨 부부는 지난달 17일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탁소 운영을 접었다. 당시 오래 켜둔 스팀다리미 증기통이 과열로 폭발해 세탁소 전면 통유리가 박살났다. 가게 앞을 지나가던 사람이 유리 파편을 맞아 다리를 다쳤고 맞은편 음식점 유리창이 깨졌으며 주차돼 있던 차량 일부분이 망가졌다.
아내 김모(67)씨는 외출 중이었고 남편 김씨도 용케 다치지 않았지만 사고 뒷수습을 할 여력이 없었다. 통유리가 부서진 자리에 나무판자를 대놓고 ‘폐업하니까 세탁물 찾아가시오’라는 쪽지만 붙여 놨다. 외동딸(42)은 “부모님은 당신들 생활비와 쌍둥이 외손녀 간식비 정도만 벌었다”면서 “사고로 벌이가 끊겨 상심이 컸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 피해자들이 3000만원이 넘는 보상금을 요구하자 김씨는 망연자실한 상태가 됐다. 주변 상인은 “김씨가 매일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한탄했고 ‘나 죽으면 끝이겠지’란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전했다.
그러다 지난 11일 김씨 부부는 그들이 기거하던 세탁소 골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남편은 “나는 현재범(현행범)이다. 할 말이 없다”고 쓴 유서를 남겼다. 부인의 목에는 무언가로 졸린 흔적이 있었고 옆에 끈과 제초제 병이 놓여 있었다. 외부인 침입 흔적은 없었다. 경찰은 김씨가 아내의 목을 조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유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