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늘고 소비 줄어 시장 열어도 괜찮다?… 다시 달아오르는 쌀시장 전면개방론

입력 2011-06-12 18:39


쌀 관세화 문제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쌀 관세화는 쌀을 수입할 때 관세를 부과하되 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국내 쌀 재고량이 갈수록 늘고 있는데다 소비량은 급감하고 있어 시장을 열어도 괜찮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열어준 시장은 다시 닫을 수 없고, 쌀은 식량안보와 직결된다는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남아도는 쌀=12일 농림수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쌀 조기 관세화를 위한 내부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내년에 관세화를 시작하려면 시행 3개월 전인 9월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우리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이미 정부는 쌀 재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당초 2015년으로 예정돼 있던 쌀 관세화를 2012년으로 앞당긴다는 내용의 ‘쌀 산업 발전 5개년 종합계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서규용 신임 농식품부 장관도 힘을 싣고 있다. 서 장관은 지난 4일 지방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현재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에 따르면 매년 2만t씩 쌀 의무수입량이 늘어나 2014년이면 의무수입량이 지금보다 6만여t 더 늘어나게 된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가 조기 관세화를 역설하는 첫째 이유는 쌀 생산량이 수요를 훨씬 웃도는 상황에서 의무 수입하는 쌀까지 늘어나 재정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 관세화를 하지 않으면 의무 수입량은 2014년까지 꾸준히 늘 수밖에 없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우리 정부는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대신 매년 의무수입량을 늘리는 최소시장접근(MMA) 제도를 선택했다.

정부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수입량 통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수입량 통제가 가능하다. 최근 국제·국내 쌀값이 1.8배가량 차이가 나기 때문에 관세를 200%만 매겨도 수입쌀이 들어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식량 자급기반 포기하나”=농업계는 필리핀처럼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필리핀은 한때 최대 쌀 생산국이었으나 시장 개방 이후 10여년 만에 쌀 부족국가로 전락했다. 필리핀은 세계 쌀값이 훨씬 낮자 수입이 이득이라고 보고 시장을 열었다. 농업·농촌 지원은 등한시했다.

전문가들은 식량 자급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곡물자급률(식량자급률)이 26.7%에 불과한데 쌀 시장마저 열면 98.0%에 이르는 쌀 자급률이 추락할 수 있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장경호 부소장은 “약간의 부담은 안더라도 현재 부분개방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장기적으로 세계 식량위기에 대처하고, 국내 자급기반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는 “조기 관세화를 하면 특별보호 요소가 없어졌다고 보고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 선진국 지위에 서게 되면 관세 감축 폭이 커지고 저율할당관세물량은 더 늘어나 조기 관세화 실익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