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72) 1200년 전 통일신라 우물의 비밀

입력 2011-06-12 17:30


2000년 여름, 경북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부지를 발굴하던 조사단은 깊이 10m가 넘는 우물 하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답니다. 1200년 전의 통일신라시대 우물 바닥 가까운 뻘층에서 8∼9세 어린아이의 전신 유골이 거꾸로 처박힌 채 있었거든요. 거의 온전하게 보존된 이 어린아이의 유골은 어떤 사연으로 우물에 빠져 있었을까요.

조사단은 처음엔 아이가 실수로 우물에 빠져 죽었을 것으로 추정했답니다. 하지만 유골 주변에 나무두레박과 토기 70여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포유류(개 고양이 소 말 사슴 멧돼지 토끼 두더지)와 조류(오리 까마귀 호랑지빠귀), 파충류와 양서류(뱀 개구리), 어류(상어 복어 대구 숭어 민어 고등어 도미) 등 각종 동물 뼈 2200여점이 무더기로 나와 의문을 남겼지요.

국내에는 뼈 전문가가 없어 일본 학자를 통해 조사한 결과, 고양이 뼈는 두개골 크기로 보아 벵골살쾡이인 야생 고양이로 김해 수가리 패총과 안면도 고남리 패총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완형으로 밝혀졌지요. 또 개는 한반도에서 확인된 것 중 가장 큰 개(몸길이 108㎝, 높이 53㎝)로 조사됐답니다.

소는 한 마리가 4등분된 채 한 토막만 나왔고, 개는 4마리가 확인됐으며, 습성상 우물에 빠져 죽을 가능성이 희박한 고양이는 5마리가 발굴돼 누군가가 동물들을 이곳에 일부러 빠뜨렸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물의 비밀을 여는 열쇠는 제일 위층에서 발견된 ‘남궁지인(南宮之印)’이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으로 이곳이 왕궁터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출토 유물들을 근거로 우물에 얽힌 수수께끼를 함께 풀어보시죠.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어느 날, 왕실 차원의 우물 제사가 벌어졌답니다. 먼저 토기를 가지런히 쌓은 다음 제물로 고양이 소 말 개 등 동물들을 빠뜨린 뒤 최후의 인신공양으로 어린아이를 산 채로 던져 넣고선 곧바로 상석을 덮어 그 위에 자갈과 흙으로 메우는 끔찍한 제의(祭儀).



신라인에게 우물은 시조(박혁거세)가 탄생한 상징적 공간이랍니다. 고고학자들은 “당시 경주는 자주 가뭄에 시달렸기 때문에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기우제였을 수도 있고, 통일신라 말 혼란기에 왕실의 안정과 풍요를 비는 제사였을 수도 있다”고 추정합니다. 그렇지만 너무 어려 유골의 성별 구분도 되지 않는 아이가 우물에 강제로 빠졌을 때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요.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이 8월 21일까지 특별전 ‘우물에 빠진 통일신라 동물들’을 연다는 소식입니다. 9세기 통일신라 우물에서 출토된 어린아이 유골과 각종 동물뼈, 토기·기와·목제품·금속품 등을 발굴 10년 만에 공개하는 전시랍니다.

우물에 얽힌 ‘전설의 고향’ 같은 이번 전시를 1200년 전 짧은 생을 마감했던 어린아이가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이광형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