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패랭이꽃
입력 2011-06-12 18:51
김동리(1913~1995)
파랑새를 쫓다가
들끝까지 갔었네
흙냄새 나무빛깔
모두 낯선 타관인데
패랭이꽃
무리지어
피어있었네
동리(東里)는 누가 뭐래도 소설가지만 그가 남긴 200여 편의 시 중에 독자를 벌떡 일어서게 하는 명편(名篇)이 적지 않다. ‘패랭이꽃’이 그런 시다. 독일 시인 카를 부세의 ‘산 너머 저 멀리 행복이 있다기에’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주의 고적한 나그네로 걸어가는 개인의 존재감과 우수를 이렇게 삽상하게 노래한 솜씨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동리는 시평론 ‘청산과의 거리’에서 소월의 시 ‘산유화’를 “조선의 서정시가 도달한 최상급의 해조(諧調)”라고 평했다. ‘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의 ‘저만치’를 ‘청산과 인간의 거리’ 혹은 ‘신에 대한 향수의 거리’라고 봤다. 여기서 타관(他關)이란 무엇인가.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것, 곧 타자(他者)가 아니겠는가. 거기 피어난 패랭이꽃은 그러면 무엇인가. 작고 예뻐서 눈물겨운 소녀들처럼 동리가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스며드는 대상, 그때 시는 우연에서 필연으로 바뀐다. 시인이 평생 사랑하고 노래하며 스며들었던 세상이 보인다. 타관을 걸어가는 시인의 절창(絶唱)이 들린다.
임순만 수석논설위원 s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