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그리스도 정신의 발현
입력 2011-06-12 17:49
빌립보서 2장 1~4, 사무엘상 24장 1~22절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은 반비례한다고 했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정신문명은 점점 퇴보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오늘의 기계문명과 인간의 정신 활동을 비교해 볼 때 어느 정도 가능한 이론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의 정신이 퇴보되고 있다면 그 정신에 반대되는 어떤 것이 발전하고 있음을 가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리스도의 정신은 현격하게 퇴보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기독교 정신을 발휘해 이 땅에서 제2의 그리스도의 정신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가 돼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 되지 못했다면 200년 이상 계속된 박해를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기 교회 역시 그와 같은 사랑으로 하나 되었기에 일본 제국주의의 종교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를 힘입지 않고는 오늘날 우리 교회들도 점점 더 그리스도의 정신을 상실해 세상 사람들의 혹독한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 겸 제사장인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이 된 증표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왕위를 지키려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찾아 왔을지라도 사울 역시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됐던 자였기에 그 사실을 귀중히 여기고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삼상 24:6). 그리고 그는 사울에 대한 처분을 오직 하나님께 맡겼습니다(삼상 24:12).
요즘 우리 교회들은 성도들 간에, 직분 자들 간에, 목회자들 간에 갈등으로 인해 분열되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서로가 겸손한 마음이 없이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지 않는 데서 비롯됐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원리입니다(잠 3:34).
셋째, 다른 사람의 일을 돌봐야 합니다. 사랑의 반대 개념은 미움뿐만 아니라 무관심도 포함합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 대상에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됐습니다. 형제자매라면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서로 돕는 것이 당연합니다. 교회에서 성도 간 관심이 없으면 결코 그리스도의 정신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복음 전도를 위해 수고하는 바울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유일하게 그를 도운 교회입니다(4:15). 바울이 세운 여러 교회가 있음에도 빌립보 교회만이 그를 도운 것은 그 교회가 바울에게 지극한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사랑과 성령의 은혜로 하나 돼 만민에게 예수님의 정신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바울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정신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가 돼 빌립보 교회처럼 어려운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정신을 발휘합시다.
임영식 사관(구세군대한본영 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