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녹취록 공개 ‘양날의 칼’… 南에 망신 주겠지만 국제사회 불신 큰 부담
입력 2011-06-10 18:13
남북 비밀접촉 내용을 담은 녹취록의 존재 및 공개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부와 북한 전문가들은 녹취록 존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10일 “녹취록은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지만, 북한이 몰래 녹음했을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공식회담은 녹취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비공개회담의 경우 양측 합의에 따라 달라지며, 통상 회담 참가자의 직급이 낮을수록 상부 보고를 위해 기록을 남겨놓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역시 “북한이 보여준 태도를 살펴볼 때 녹취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으며,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 비밀접촉을 주도했던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녹취록은 반드시 있다”고까지 강조했다.
문제는 북한이 녹취록을 갖고 있을 경우 실제 이를 공개할지 여부다. 북한이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를 내세워 공언했고, 이에 맞서 우리 정부도 “공개하라”고 맞불을 놨기 때문에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관측이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도 “북한의 협박성 발언에 실소를 금할 수 없으며 치기어린 행동”이라면서 녹취록 공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녹취록 공개는 북한에 ‘양날의 칼’이다. 단기적으로는 남한 정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국제적으로 망신을 주는 한편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목적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다. 특히 돈 봉투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북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도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남한 여론이 북한에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있다. 북측의 녹취록 공개로 남측 여론이 악화될 경우 남남갈등 유발 효과보다 오히려 현 정부가 주장하는 ‘원칙론’에 힘이 실릴 수 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조차 “북한이 심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성명에서 “녹취록 공개는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6·15 남북 공동선언의 원칙에 따라 남과 북 모두 좀 더 성숙된 자세로 이번 사태를 풀어가기를 바란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국제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을 전망이다. 일국의 대표들이 비밀리에 만난 자리에서 상대방 몰래 내용을 녹음하고, 이를 공개한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찾아보기 어렵다. 스스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자해적 성격’이 있어 북한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