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뱅 쇼메 감독 ‘일루셔니스트’… 동화적 감성에 몽환적 스토리 가미돼 가슴 뭉클
입력 2011-06-10 17:45
마술사가 재빠르게 손을 쥐었다 펴자 손바닥에 한 다발의 꽃이 피어난다. 꽃은 어디에서 왔을까? 순수한 소녀는 마술사와 함께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 함께 여정을 떠나게 된 두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몽환적인 스토리와 동화적 감성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2003년 첫 장편 데뷔작 ‘벨빌의 세 쌍둥이’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프랑스의 실뱅 쇼메 감독이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리는 자크 타티(1909∼82)가 그의 딸 소피 타티셰프에게 쓴 편지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1959년 파리. 텔레비전과 영화, 록스타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고 퇴물이 돼버린 나이 든 마술사 타티셰프는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를 찾아 이곳저곳 유랑한다. 어느 날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 선술집에서 공연을 하던 그는 그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순수한 소녀 앨리스를 만난다. 앨리스의 낡은 구두를 딱하게 여긴 타티셰프가 빨간 구두를 사오던 날 소녀는 마술사와 함께 마을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앨리스는 그의 마술이라면 자신에게도 희망이 찾아올 것으로 생각한다. 타티셰프도 자신의 마술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앨리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함께 에든버러로 향한다.
그러나 에든버러의 삶이 지속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하게 어긋난다. 타티셰프는 앨리스를 친딸처럼 아끼지만 그녀의 동심을 지켜주기에는 현실이 팍팍하다. 마술사는 소녀 몰래 세차와 간판 도색, 백화점 진열대 공연 등으로 번 돈으로 소녀에게 코트와 하이힐을 건네지만 숙녀로 성장하면서 부풀어가는 소녀의 꿈을 감당하기엔 버겁다.
화려한 볼거리가 숨 가쁘게 이어지는 할리우드식 애니메이션과 달리 일루셔니스트는 한 장 한 장 완성도 높은 그림으로 애니메이션의 참 맛을 전한다. 3D나 컴퓨터 그래픽 같은 특수효과로 무장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세련된 팝송이라면 일루셔니스트는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색채와 섬세한 묘사를 앞세우며 클래식 음악을 떠오르게 한다.
흐르는 세월 속에 잊혀지는 마술사와 피에로, 복화술사 등 서커스 단원들의 쓸쓸한 삶과 화려하게 피웠다가 사그라지기를 반복하며 인생의 가장 찬란한 도약을 준비하는 앨리스의 상반된 모습은 삶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영화는 2010년 뉴욕비평가협회와 유럽영화제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 상을 휩쓸었고 2011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전체관람가로 16일 개봉한다.
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