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만들려 11년 동안 무려 10만장의 그림 그려”

입력 2011-06-10 17:45


무려 11년이다. 그 기간 동안 10만장의 그림을 손으로 그렸다. A4용지 한 장 길이가 30㎝ 정도니까 10만장을 늘어놓으면 3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우리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이 빛을 보기까지 걸린 시간과 노력이 이 만큼이다. ‘한국 관객의 마음에 다가가는 한국 애니’를 꿈꾸며 영화 제작에 매달려온 안재훈(42) 감독을 지난 7일 서울 한강로3가 CGV용산에서 만났다. 뿔테 안경에 수염을 기른 그는 인터뷰 내내 펜으로 뭔가 끊임없이 수첩에 스케치하는 등 만화가다운 면모를 보였다. 안 감독에게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한 작품에 매달릴 수 있었는지 묻자 뚝심이 묻어나는 답변이 돌아왔다.

“재패니메이션이나 할리우드 애니와는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게 2000년이네요. 우리 주변 풍경 속에서 우리 이웃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우리만의 이야기 말이에요. 하지만 당시엔 아무도 제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니메이터 등 스태프들에게 ‘7∼8년 뒤에나 나올 작품을 할 생각인데 같이 하겠느냐’고 여쭤봤죠. 대부분 하시겠다고 해서 지금까지 끌고 왔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은 1970년대 말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성장 드라마다. 주인공 이랑은 달리기에 자신 있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육상 선수를 꿈꾸지만 계주에서 진 뒤 경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방황한다. 영화 ‘러브스토리’ 속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꿈도 꾸지만 정작 까까머리의 같은 학교 학생인 철수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이랑과 철수, 그리고 이랑의 단짝 친구 수민은 나름의 경험을 하며 점차 어른이 돼간다.

안 감독은 영화를 통해 경쟁에서 밀리더라도 노력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주변은 항상 똑같아요. 그런데 살다보면 주변이 이전과 달라 보이는 순간이 오거든요. 바로 그 때 인간이 성장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소박한 경험을 통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두렵고 떨리는 성장통을 겪으면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내는 과정의 아름다움이랄까?”

안 감독은 영화 배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전국을 답사한 끝에 70∼80년대 분위기를 간직한 군산 경암동 철길이나 서울 이화동 골목, 전주 시내, 춘천 마라톤 코스 등을 배경으로 삼았고 당시 유행했던 패션과 소품들을 완벽에 가깝게 복원했다.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안 감독은 “제작 기간이 길어 인물들의 감정의 폭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며 “이 부분에 신경을 쓰다보니 영화 전체 흐름은 자연스러워졌지만 이야기가 활달하진 않다”고 설명했다.

안 감독은 주인공 이랑과 철수, 수민의 목소리를 맡은 배우 박신혜와 송창의, 오연서의 열연을 칭찬했다.

“사실 목소리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막판이라도 배우 교체할 생각이 있었어요. 어차피 오랜 시간 끌어온 작품이니까 완성도를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모두 열정적으로 목소리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감격할 정도였습니다.”

더빙 작업 뒤에는 배우들의 목소리에 맞춰 작화를 재손질하는 정성을 기울였다고.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는 목소리 전달이 미흡했던 기존 한국 애니의 단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 관람가로 23일 개봉한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