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韓流, 거센 바람 기대된다… 파리서 런던서 “K-POP 사랑해요”
입력 2011-06-09 19:34
프랑스 파리의 관문인 샤를드골공항은 8일(현지시간) 케이팝(K-POP·한국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한류팬 700여명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10, 11일 이틀 동안 열리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합동 콘서트 ‘SM타운 라이브’를 앞두고 공연에 참가하는 동방신기, 샤이니 등이 입국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이들은 동방신기 등이 입국장에 모습을 나타내자 환호성을 지르며 반겼다.
이런 소동은 예견된 일이었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슈퍼주니어, 에프엑스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가수들이 총출동하다시피하는 ‘SM타운 라이브’ 티켓은 온라인으로 판매가 시작되자 10여분 만에 매진됐다. 표를 구하지 못한 수백명의 팬이 지난달 1일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추가 공연을 요구하는 시위까지 벌이는 바람에 당초 하루 일정의 공연은 이틀로 늘어났다.
자국 문화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는 프랑스에서 불고 있는 케이팝의 인기, 이는 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한류가 꿈틀대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럽 현지에서 한류 관련 업무를 수행 중인 현지 관계자들은 케이팝을 중심으로 젊은층 사이에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한류재단)에서 유럽 통신원으로 활동 중인 민지은(30·여)씨는 9일 본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젊은 층에서 케이팝 열풍이 일고 있고, 한국문화 전반으로 팬들의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류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단체로 해외 문화시장 개척을 위한 각종 조사를 수행하는 곳이다. 민씨는 파리3 소르본 누벨대 대학원에서 문화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으로 지난해부터 한류 관련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민씨는 “케이팝을 좋아하는 청소년 다수는 2008년 빅뱅의 ‘하루하루’를 접한 뒤 케이팝에 빠졌다고 말한다”며 “유럽의 케이팝 인기는 프랑스어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으며 다른 지역으로 조금씩 확산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케이팝을 좋아하는 유럽 팬은 13만명 정도로만 추정된다. 한류는 이제 시작되는 단계”라며 “(재즈보컬인) 나윤선 정도를 빼면 파리 음반 매장에서 한국 음반을 찾긴 힘들다”고 했다. 그는 “한류는 잠깐의 유행으로 그칠 수도 있다”며 “더 확산될 수 있을지는 앞으로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팝의 본고장’ 영국에서도 케이팝은 인기몰이를 시작한 분위기다. 지난 3일 런던 트라팔가광장 인근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케이팝 라이브 경연대회’가 단적인 예다. 한국 가수들의 노래와 춤을 따라하는 일종의 콘테스트인 이 대회 행사장엔 관객만 300명 넘게 몰렸다.
원용기 문화원장은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유튜브랑 페이스북으로만 홍보했는데 유럽 각지에서 79개 팀이 참여하겠다며 동영상을 보내왔다. 한류에 대한 관심이 기대 이상”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난 2월 영국 젊은이들이 만든 ‘케이팝 팀’이라는 동호회가 같은 장소에서 한국 음악을 틀어주는 ‘케이팝 나이트’라는 행사를 했는데 그땐 600명이 넘게 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원 원장 역시 “아직은 케이팝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조금씩 생겨나는 상황이며 한류가 영국의 사회현상이 됐다고 보긴 힘들다”고 했다.
케이팝이 유럽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인기가 감지되고 있긴 하지만 피부색과 정서가 다른 지역에서 우리나라 가수가 매력을 어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음악의 질이 높아졌고 이를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홍보할 수 있다는 점 등은 성공을 조심스럽게 낙관하게 만든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케이팝의 수준이 80, 90년대에 비해서 크게 올라간 것은 사실”이라며 “한류가 확산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했다.
한편 케이팝뿐 아니라 현재 유럽에서는 우리 영화나 드라마도 저변을 넓혀가는 추세다. 한류재단에 따르면 지난 4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적인 방송콘텐츠 마켓 ‘MIPTV 2011’에서는 드라마 ‘아이리스’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눈물’이 프랑스에 판매된 것을 비롯해 드라마 ‘파스타’가 불가리아에,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매머드’가 이탈리아에 팔렸다.
한국 영화의 인기는 더하다. 프랑스 유명 영화잡지인 ‘카이에 뒤 시네마’가 지난해 발표한 ‘2010독자선정 톱10’에서 우리 영화는 두 편(‘마더’ ‘시’)이나 이름을 올렸다.
문효진 한류재단 전문위원은 “온라인을 통해 한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외국 팬과 공유되면서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유럽 현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케이팝뿐 아니라 다양한 국내 콘텐츠가 앞으로 유럽에서 인기를 끌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