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체 사정 파문] 이건희 회장 연일 경고성 발언… 대대적 自淨운동 신호탄? ‘이재용 체제’ 포석?

입력 2011-06-09 18:21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는 것 같다. 제일 나쁜 것이 부하 직원들 닦달해서 부정시키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연일 비리척결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삼성테크윈의 감사에서 적발된 임직원들의 부정행위를 전 계열사 차원의 문제로 보고 이틀 연속 경고성 발언을 했다. 삼성은 미래전략실의 감사팀을 별도 조직으로 떼어낸 뒤 계열사를 상대로 강도 높은 감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 회장은 9일 오전 8시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하는 길에 로비에서 기자들을 만나 “과거 10년간 한국(삼성)이 조금 잘되고 안심이 되니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더 걱정이 돼서 요새 바짝 이 문제를 챙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테크윈 감사를 계기로 임직원들의 부정행위를 단속하고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삼성 계열사 전체로 확산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회장은 적발된 부정행위가 어떤 것들인지 짐작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향응, 뇌물도 있지만 제일 나쁜 것이 부하 직원들을 닦달해서 부정시키는 것”이라며 “자기 혼자 부정하는 것도 문제인데 부하까지 끌고 들어가면 나중에 부하들도 저절로 부정에 입학하게 된다”고 말했다. 비리가 조직적으로 만연돼 있다는 의미다.

협력업체로부터 접대나 향응을 받게 되면 공급받는 부품에 대한 검사를 대충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불량 제품이 나오게 되고, 이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을 이 회장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 삼성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삼성 관계자는 “작은 부품의 불량이 제품 전체 불량으로 이어지면 회사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 회장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다른 관계자는 “이 회장이 ‘매번 감사 때마다 대충 하고 징계 좀 내리고 마무리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을 완전히 근절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그룹 감사를 맡고 있는 경영진단팀이 봐주기 감사를 해왔다며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이에 따라 그룹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에 대한 우수 인력 보강은 물론 현재 전무급으로 돼 있는 경영진단 책임자의 직급을 부사장급으로 높여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할 예정이다. 또 현재 경영지원실 소속으로 돼 있는 경영진단팀을 사장 직속 등의 독립 기구로 재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삼성테크윈의 새 사장에는 감사팀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철교(53)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부사장을 내정했다.

한편 이 회장이 이틀 연속 임직원들의 부정 문제를 거론하면서 조직 기강을 바로잡으려는 데 대해 승계 구도를 다지기 위한 포석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아들 이재용 사장이 전면에 나설 경우 부담이 될 수 있는 구세대 인사들을 솎아내기 위한 작업 아니냐는 것이다. 조직적 부정행위의 책임을 ‘부하 직원을 닦달해서 부정을 저지르게 하는 상사’에게 지우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그런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삼성의 자정운동과 인적 쇄신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전석운 기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