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은영] 살리는 손, 살리는 말

입력 2011-06-09 18:03


생명을 살리는 약풀이 있을까? 바리공주는 오구대왕이 내다 버린 막내딸이다. 왕이 죽을병에 걸리자 온갖 험한 고생 끝에 불사약과 꽃을 구해온다. 왕은 이미 죽은 뒤였다. 바리공주는 왕을 불사약과 꽃으로 살린다.

버들도령은 산속 바위동굴에 사는 신선이다. 한겨울에 참나물을 뜯어오라는 계모의 구박으로 산속을 헤매다 동굴까지 오게 된 연이에게 참나물을 준다. 결국 화난 계모는 도령을 죽이고, 연이는 도령을 환생꽃으로 살린다.

모두 바리공주 설화, 버들도령 설화 속 이야기다. 꿩 대신 닭! 현실에는 생명을 살리는 약풀 대신 생명을 살리는 약손이 있다. 우리 어머님 손 역시 생명을 살리는 약손이다. 죽어가던 화초가 어머님 손만 닿으면 파릇파릇 살아난다. 그래서 어머님 베란다는 쌩쌩한 화초로 넘쳐난다. 반면 우리 집 화초는 늘 비실비실하다. 어머님은 물 줄 때도, 누런 잎을 뜯어줄 때도 말을 걸어주고 관심을 보여주면 저절로 살아난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물을 제때 못 주는 걸로 보아 약손의 비결은 관심이다.

요즘 잘 나가는 중견 연예인이 방송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담배를 피웠고 3학년 때 딱, 끊었다고 고백했다. 너무 이른 흡연도 놀랍고 어린 나이에 하루아침에 끊었다는 내용은 더 놀라웠다. 누군가 해준 “너 참 귀엽다”는 관심어린 말 덕분이라고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한 분도 생활이 어려워 일찍이 학업을 포기했는데 “좋은 작가가 될 거야”라는 담임선생님의 관심어린 말 덕분에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칫 시들 뻔했던 인생을 살려준 따뜻한 말들이다.

하지만 어떤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비겁하게 인터넷의 익명성에 숨어서 쏘아대는 악플은 정말 무섭다. 요즘 예능프로에 나온 여가수가 악플에 시달려 힘들어한다고 한다. 원래 안티팬이 많은데 그들은 여가수가 기침만 해도 악플을 달 정도란다. 악플 때문에 어떤 여배우는 자살까지 했다.

나는 어릴 때 오빠와 친척집에 새해 인사를 갔었다. 그때 오빠가 내게 억지로 노래를 시키더니 ‘넌 앞으로 노래하지 마’라고 툭 뱉고 자기는 멋지게 노래를 뽑았다. 나는 그 뒤로 남 앞에서 노래를 안 불렀고 영원한 음치가 됐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며 ‘넌 못해!’처럼 상처 주는 말은 안 하려 했다. 절대로!

들에는 온갖 풀이 난다. 깽깽이풀, 억새풀, 미치광이풀…. 약풀도 나고 독풀도 난다. 잘 알려진 독풀인 ‘부자꽃’도 난다. 원이름은 영화제목으로도 등장한 각시투구꽃이고 덩이뿌리를 약으로 쓴다. 요놈이 바로 장희빈이 마시고 죽은 사약의 재료다. 이처럼 사람을 살리는 약풀과 달리 독풀은 대부분 사람을 죽이는 데 쓴다.

기를 살리는 말은 약풀과 닮아 약플이고, 독풀은 상처 주는 악플과 참 닮았다. 악플과 약플도 님과 남처럼 점 하나 차이, 그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다. 상처 주는 악플 대신 고마운 말로 기억되는, 인생을 살리는 약플을 쓰는 게 어떨까? 점 하나 더 붙은 약플을 쓰면 평생 고맙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오은영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