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조용래] 부품·소재산업에 부는 훈풍
입력 2011-06-09 18:03
일본 히타치그룹은 다음 달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변형근무시스템을 도입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고 주말에 쉬는 기존의 주5일 근무제가 목·금을 쉬는 대신 토·일에 일하는 틀로 바뀐다. 한시적이지만 한 주일이 ‘월·화·수·토·일·목·금’으로 운영되는 셈이다.
다 전력 부족 탓이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에다 하마오카 원전마저 가동이 중지돼 일본 정부는 올 여름 전력수급을 위해 전력소비 삭감 목표치를 15%로 설정했다. 이에 기업들의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히타치처럼 전력소비가 많은 주중에 쉬고 주말에 일하겠다는 곳도 있고 개별적으로 서머타임제를 도입하려는 기업도 있다.
바야흐로 일본에서는 더위를 견디자는 뜻의 내서(耐暑) 경제가 시작되려고 한다. 내서 경제의 여파는 한국까지 미친다. 대지진으로 인한 일본의 생산차질은 자동차와 그 부품, 철강, 석유제품 등에서 두드러지면서 이 분야에 대한 한국의 대일 수출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지진 후 對日 무역수지 개선
산업연구원(KIET)의 ‘5월 산업동향 브리프’에 따르면 대지진 이후 대일 무역수지가 크게 개선됐다. 3월과 4월(20일까지) 대일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각각 53.8%, 70.1%나 늘었으나 수입 증가폭은 8.4%, 3.1%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역적자 규모가 23억 달러나 줄어들었다.
만성적인 대일 무역수지 적자행진에 변화가 감지되는 내용이다. 대일 수출은 당분간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서 무역수지 개선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대지진 직후 우려됐던 일본산 부품·소재 조달 애로로 인한 우리 산업의 피해보다 대일 무역수지 개선효과가 더 크다는 얘기다.
이뿐 아니라 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들은 안정적인 부품·소재 공급처로서 한국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최근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기업은 물론, 그동안 일본산에 의존해왔던 서구 기업들조차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부품·소재 공급처 다변화를 구상하고 있고 그 대상 중 하나로 한국을 꼽는다.
지난달 30∼31일 무역협회 주최로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일본대기업 초청 부품·소재 수출상담회’는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일본 측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가격에선 중국이 낫겠지만 품질까지 감안하면 한국이 적격이다”고 말했다. 우리의 부품·소재 분야에 훈풍이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부품·소재 분야는 아직까지 대일 무역수지 적자의 주범이다. 지난해 대일 무역수지 적자규모 361억2000만 달러 가운데 부품·소재 때문에 빚어지는 몫은 243억 달러나 된다. 갈 길은 아직 멀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단지 이웃 일본의 불행에 편승해 도약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부품·소재산업은 빠르게 성장해 왔다. 지난해 부품·소재 관련 수출규모는 2293억 달러로 수출총액 4664억 달러의 49.2%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IT기기 등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소재는 아직까지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대일 무역역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日기업 직접투자 적극 유치를
우선 부품·소재 관련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최근 미쓰비시자동차 등 일본 완성차업계에 처음으로 2억3300만 달러 상당의 부품 공급계약을 맺은 현대모비스의 경우 기술력은 일단 인정받은 셈이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2%에 불과하다. 8%에 이르는 선진국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다.
올해로 만료되는 ‘부품·소재특별조치법’을 연장해 지난 1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기술력 있는 부품·소재 기업을 지속적으로 발굴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일본기업의 부품·소재 관련 직접투자를 유치하는 데 정부 차원에서 적극 나서야겠다. 부품·소재산업에 부는 훈풍, 그냥 보내서야 되겠는가.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