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슈퍼 대포
입력 2011-06-09 17:43
대포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는 발상을 한 사람은 캐나다의 제럴드 불(1928∼1990)이다. 22세에 토론토 대학에서 우주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딸 정도의 천재인 그는 탄도(彈道) 연구에 흥미가 있었다. 불은 로켓의 90%를 차지하는 1단계 추진체의 역할을 슈퍼건(supergun)이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슈퍼건으로 2·3단계 추진체와 인공위성을 고도 150㎞까지 쏘아 올리면 그 뒤에는 약간의 추진력만으로도 400∼500㎞ 상공 우주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의 구상은 기술과 비용면에서 로켓보다 이점이 있었으나 캐나다 정부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상에서 발사되는 모든 화포를 지배하려는 미국 육군이 고도 100㎞ 이상 발사체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미 공군에 맞서기 위해 불의 연구를 지원하고 나섰다. 불은 1966년 36m 길이의 대포로 무게 180㎏의 탑재물을 180㎞ 상공까지 올려 보냈다. 그러나 미 육군은 이듬해 갑자기 지원을 철회했다.
불은 관심을 병기 쪽으로 돌려 포병의 기준 병기인 155㎜ 야포의 사정을 비약적으로 늘리고 포탄 위력도 증가시킨 GC45를 개발했다. 그러나 대량 발주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미 국방부는 무기 로비스트에게 넘어가 8배나 비싼 로켓식 포를 채택했다.
불은 그 후 남아공 중국 유고슬라비아 등의 대포 개량에 관여하다가 1988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슈퍼건 제작을 의뢰받았다. 이른바 ‘바빌론 프로젝트’. 구경 1m, 길이 156m, 무게 1665t에 이르는 슈퍼건이 완성되면 이라크의 포탄은 우주 궤도를 타고 돌다 지구상 어느 곳이든 공격할 수 있게 될 터였다. 그러나 바빌론 프로젝트는 국제 정보기관의 주목을 받던 불이 벨기에 브뤼셀의 집 앞에서 암살당함으로써 무산됐다.
국방과학연구소가 8일 레일건(電磁砲·railgun) 개발 계획을 밝혔다. 레일건은 2개의 활주 레일에 포탄을 얹고, 레일에 강한 전류를 흘려 발생하는 강력한 자기장과 포탄을 통하는 대전류 사이에 작용하는 반발력으로 포탄을 발사한다. 미 해군이 2005년부터 2억1100만 달러를 투입해 개발 중이며 작년 12월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6분 만에 322㎞ 거리의 표적을 맞히는 게 최종 목표다.
신무기 개발을 공언해 적을 주눅들게 할 수 있지만 외려 자극할 수도 있다. 레일건 발표가 나오자 얼마전 포신이 파열된 K-1 전차며, 필요할 때 고장난 K-9 자주포가 떠올랐다. 레일건이 허세(虛勢)가 아니길 바랄 뿐.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